[분수대] 落花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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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꽃이 지기로소니/바람을 탓하랴/주렴 밖에 성긴 별이/하나 둘 스러지고…촛불을 꺼야 하리/꽃이 지는데…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 하노니/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Q:웟 시를 읽고 답하라. 시에 나타난 정서와 거리가 먼 것은?

①소멸의 애통함에 몸부림친다.

②관조적 자세를 유지한다.

③신선사상이 엿보인다.

④자연의 섭리가 느껴진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1946년 발표한 '낙화(落花)'. 스무살 때 강원도 산속에 머물며 지었다는 자유시다. 같은 청록파 시인 박목월은 그의 작품 세계를 네 단계로 나눠 설명한 바 있다. 암울과 회의-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수-선(禪)과 관조-한만한 동양적 정서다. 이 중 '낙화'는 3단계 작품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자연의 섭리와 우아, 관조. 시에는 세가지 코드가 녹아 있다. 우선, 꽃은 피었다가 반드시 지고 바람은 꽃이 지지 않아도 분다고 했다. 우주의 이치인 생즉사(生卽死), 불가의 무상(無常)이 느껴진다.

지는 꽃을 보기 위해 촛불을 꺼야 한다고도 했다. 땅에 떨어지는 꽃잎을 조용하고 우아하게 바라보려는 자세가 엿보인다. 또 속세를 버리고 산속에 숨어 사는 자의 고운 마음을 세인이 알게 될까 두려워할 뿐이라고 노래했다. 한발 물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아름다움, 관조미가 풍긴다.

지난 정부 시절의 '대'통령(代統領) 박지원씨가 구속되며 '낙화'를 읊조렸다. 그의 손엔 대하소설 '한강'도 들려 있었다. 떠나는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려는 재치일까.

하지만 시 한 줄의 인용이, 순간적 재치가 소멸을 아름답게 하는 게 아니다. 지난 몇년간 숨긴 것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섭리를 어겼고 세상을 시끄럽게 했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려 했던 그였다.

결코 '낙화'의 마음이 아니었다. 감옥에 가면서까지 대북송금 사실을 몰랐다고 항변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사람을 고소했다. 이 역시 낙화의 자세와 거리가 멀다.

서정시인 이형기는 또 다른 '낙화'에서 깨끗이 떠날 줄 아는 이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참, 서두에 낸 질문의 답은 ①번이 아닐까.)

이규연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