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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ㆍ김태형 전설 잇는다…뜨거운 양의지

중앙일보

입력

 
프로야구 NC-두산의 플레이오프(PO)는 '포수 시리즈'다. 김경문(57) NC 감독과 김태형(48) 두산 감독은 모두 두산의 안방마님 출신이다. PO 1차전에서 빛난 주인공도 두산의 포수 양의지(28)였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지난해 10월 부임하자마자 양의지를 불렀다. 김 감독은 "주전 포수는 너다. 네가 책임감을 가지고 투수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업 포수 최재훈(26)이 부쩍 성장했지만 김 감독은 역할 분담을 명확히 했다. 확실한 주전 포수가 있어야 팀이 안정된다고 믿어서였다. 투수를 배려하고 팀을 위해 희생하라는 감독의 메시지를 양의지는 정확히 읽었다. 김 감독은 "(면담 이후) 양의지가 투수에게 공을 건네주는 자세부터 달라졌다. 손으로 잘 닦아서 건네주더라"며 흡족해 했다.

김태형 감독의 기대대로 양의지는 두산 마운드를 탄탄하게 만들었다. 진야곱(26)·이현호(23)·허준혁(25)·함덕주(20) 등 영건들의 성장을 이끌었다. 젊은 투수들의 제구가 흔들려도 몸을 날리며 공을 받아냈다. 진야곱은 "양의지 선배가 우리 때문에 힘들었을 거다. 그래도 '자신감을 갖고 던져라' 며 격려해준다"고 말했다.

후배들이 경기에 집중하지 못하면 양의지는 엄한 선배로 돌변했다. 더그아웃 뒤로 불러내 큰 소리로 후배들을 나무라기도 했다. 이현호는 "의지 형이 다잡아줘서 우리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5.43이었던 두산의 팀 평균자책점은 올해 5.02(6위)로 내려갔다. 니퍼트와 마야·스와잭 등 외국인 투수들이 부진한 가운데도 평균자책점이 내려갔다. 투수들이 잘해줬지만 양의지의 리드가 큰 역할을 했다.

양의지는 알아주는 입담꾼이다. 상대 타자가 타석에 서면 능청스럽게 말을 건다. 그러면서도 교묘하게 타자의 허를 찌른다. 롯데에서 4년을 뛰다 2013년 두산으로 복귀한 홍성흔은 "롯데에서 뛸 때 양의지 때문에 참 힘들었다. 내가 집중하는 걸 교묘하게 방해하면서 허를 찌르는 공배합을 했다. 곰 같아 보이지만 양의지는 여우"라며 웃었다.

양의지는 타석에서도 투수들을 돕는다. 올해 5년 만에 20홈런을 때렸고, 타율(0.326)·타점(93개)도 데뷔 후 최고 기록을 세웠다. 양의지의 가치는 대체선수 대비 기여도(WAR·경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량을 가진 가상의 선수와 비교해 팀에 몇 승을 더 안기는지를 계산한 값)에서 잘 드러난다. 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양의지의 WAR은 6.377로 프로야구 전 선수 가운데 8위다. 타자 중에선 테임즈(NC)·박병호(넥센)·나바로(삼성)·김현수(두산)·박석민(삼성)에 이어 6번째로 높다.

양의지는 포스트시즌에서도 빛나고 있다. 1차전에서 완봉승을 거둔 니퍼트는 "포수 양의지를 믿는다. 사인이 안 맞을 때는 내가 그에게 맞춘다"고 말했다. 준PO에서 1승 2세이브를 올리며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한 이현승은 "준PO 2차전 3-2로 앞선 8회 2사 만루 위기에서 의지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언더셔츠 두 개를 입은 걸 보니 형도 늙었다'고 하더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긴장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마음 편하게 던졌다"고 했다. 준PO 4차전에서 양의지는 8-9로 뒤진 9회 초 2루타를 때려 대역전극을 이끌어냈다.

이번 PO에는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포수들이 총출동한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우승 포수였던 김경문 감독은 NC 지휘봉을 잡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95년 두산이 우승하는 순간 안방을 지키고 있었다. 포수에서 지명타자로 이동한 홍성흔은 2001년 우승 포수였다. 올 가을 두산이 우승한다면 양의지는 두산의 네 번째 우승 포수가 된다.

창원=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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