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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안보리로 가나] 北·美 5자회담 싸고 氣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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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8일 한.미.일 3국이 추진키로 한 5자회담(남북, 미.일.중)을 사실상 거부하는 성명을 내 북핵 해결을 위한 조기 대화가 불투명해졌다. "미국이 표방하는 그 어떤 다자회담(5자회담)에도 더 이상 기대를 가질 수 없게 됐다"고 한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자위적 핵 억제력을 강화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핵 재처리 등을 통해 핵무기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 9일 관영 매체를 통해 처음으로 핵 억제력 보유 필요성을 언급한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그런 만큼 북한은 한.미 정보당국이 파악할 수 있는 형태로 핵 재처리에 나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뿐 아니다. 북한은 마약 밀매, 달러 위조, 무기 밀매 등에 대한 미.일 등의 대북 압박을 "정전협정 포기, 선전 포기, 전쟁행위"로 간주하고 보복 권리 확보를 거듭 밝히고 나섰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은 셈이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5자회담이라는 형식보다는 미국 주도의 대북 압박이 직접적인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외무성 대변인 성명은 미국의 대북 압박을 "해상 봉쇄에 맞먹는 악랄한 적대행위"로, 다자회담을 "고립 압살을 가리는 위장물"로 규정했다.

성명이 "정권 교체"까지 언급한 데서 대북 압박에 대한 위기감도 감지된다. 미국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수출 봉쇄를 위해 확산방지구상(PSI)을 구체화하고 있고, 일본은 북한 마약 거래 및 조총련 대북 송금 봉쇄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은 미국이 대화보다는 압박 쪽에 무게를 두면서 대북 무기수출 통제 등으로 사실상 경제 제재에 들어가면서 큰 불만을 가졌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북한의 강경 입장으로 북.미간에는 다시 기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5자회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서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반도 주변국 간의 외교 교섭을 통해서가 아니라 유엔에서 국제 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로 북핵에 접근하겠다는 압박이다. 미국은 현재의 북.미 관계로는 8월 말 이후 경수로 공사가 어렵다는 태도도 보인 바 있다.

그렇다고 북.미가 포함된 다자대화가 완전히 물 건너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의 성명이 대화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은 데다 자신들이 주장해온 북.미 양자회담 성사를 위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측면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성명은 "거부" 대신에 "기대를 가질 수 없다"는 표현을 썼다.

다자대화 형태를 둘러싼 줄다리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고, 그 기한은 경수로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해야할 8월 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오영환.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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