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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년 전 호주인이 찍었다, 3D로 보이는 한국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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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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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사진가 조지 로스가 1904년 찍은 서울 동대문. 아래 사진은 로스의 고향 클룬스에서 채굴한 금으로, 구본창이 올해 찍었다. [사진 국제교류재단]

1904년 호주 사진가 조지 로스(1861∼1942)는 사진 장비를 짊어지고 한국에 왔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지 7년이 지난 때로, 이곳은 러·일 전쟁의 소용돌이 속이었다. 그는 일본인 조수를 데리고 다니며 눈에 보이는 풍경을 스테레오그래프로 남겼다. 스테레오그래프는 두 개의 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찍은 한 쌍의 사진이다. 입체경으로 두 사진을 동시에 보면 3D 효과가 난다. 교통 수단과 사진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공간을 좁힐 수 있게 됐다. 여행이 여가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한 이 시기, 스테레오그래프로 세계 각지의 입체 이미지를 보는 일은 서구 중산층의 오락으로 확산됐다.

‘1904 조지 로스, 2015 구본창 … ’ 전
렌즈 2개 달린 카메라로 촬영
특수 안경으로 보면 입체 효과
구본창은 로스 고향 찾아 기록

 로스의 카메라에는 전통 건축물 위로 솟아오른 명동성당, 서울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의 굴뚝과 전신주, 순종비의 국상으로 흰 갓(白笠)을 쓴 남자들 등이 담겼다. 그는 사진을 찍는 동시에 자기가 본대로 메모를 남겼다. 이런 식이다. “한국에서는 모자가 이상하고 특이할수록 그 모자를 쓴 사람의 자부심이 높아지나 보다. 지위가 높고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일수록 모자가 더욱 화려해지고 옷은 더욱 헐렁해지는 듯하다.” 청·일 전쟁의 전운이 휩쓸고 간 평양에서는 이렇게 적었다. “건물과 벽, 주민들을 비롯한 이 도시의 모든 것들이 예전에는 더욱 영화를 누렸을 것 같다.”

 로스가 한국서 남긴 기록은 2004년 『호주 사진가의 눈을 통해 본 한국-1904』(교보문고)라는 사진집으로 출간됐다. 사진가 구본창(경일대 교수)은 이 책을 감수한 데 이어 로스의 여정을 거꾸로 따라갔다. 111년 전 로스가 낯선 이곳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며 사진을 찍었듯, 로스의 고향 클룬스의 풍경과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멜버른에서 1시간 반 떨어진 클룬스는 황금광 도시였다. 채굴꾼들의 전리품과 번영을 기록하기 위해 일찌감치 사진이 발달했다. 지금은 고즈넉한 이 외곽도시를 구본창은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또 현대의 호주 사진가 윌리엄 양은 서울과 파주의 정경을 새로 찍었다. 서울 을지로길 국제교류재단 KF갤러리에서 사진전 ‘1904 조지 로스, 2015 구본창 & 윌리엄 양’이 열리게 된 배경이다.

 전시를 기획한 캐서린 크롤 큐레이터는 “사진 이미지를 통해 과거와 현재, 예술가와 지역 사회, 역사와 장소, 클룬스와 서울을 연결하는 문화 교류 프로그램”이라며 “예나 지금이나 사진은 장소를 상상케 하며, 그 자리에 머문 채로 미지의 곳으로 떠나는 경험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22일까지. 무료. 02-2151-6520.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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