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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맛] 꼼실이 부부의 초보 요리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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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충~성."

새벽잠에 곤히 빠진 시각에 온 집안이 떠나갈 정도로 울려퍼지는 외침. 화들짝 놀라 눈을 뜨니 웬 군인이 거수경례를 하며 떡하니 침대 머리에 서 있다.

'이게 누구, 혹시 간첩.'

부스스한 눈을 비비고 보니 꼼꼼이다.

"앙실이 남편 꼼꼼이는 3박4일 동안 예비군 동원훈련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우하하하…되게 웃긴다."

평소와 다른 꼼꼼이 모습에 웃음부터 터져나왔다. 어젯밤 예비군복을 챙겨주긴 했지만 이른 새벽에 이런 퍼포먼스가 내 앞에 펼쳐질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우와, 제법 늠름하고 씩씩한 군인아저씬데….' 비몽사몽 뿌듯함에 취해 있던 것도 잠시. 배웅하려고 몸을 일으켜 다시 보니 가관이다. 바지의 허리단추가 채워지지 않았다. 결혼 후 살이 쪄서 채울 수가 없었단다. 윗도리도 살이 군복 밖으로 삐져나오려 한다. TV에서 보는 군인아저씨들과 영 딴판이다.

'에구, 맨날 밥 안 해줘서 영양실조 걸리겠다고 노래하더니…' 핀잔을 주려다가 한손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틀어막았다. 먼길 떠나는 서방님께 할 말이 아니지 않은가. 정신 차리고 나니 갑자기 '3박4일=생과부'가 머리를 때린다.

"우리 사이를 갈라 놓는 예비군 훈련이 미워." 현관 앞에서 닭살 애교로 배웅했다.

'찐한' 입맞춤으로 답을 대신한 꼼꼼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라의 부름'에 따랐다. 뒷모습을 보니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들 군대 보내는 엄마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꼼꼼이의 빈 자리는 3박4일 동안 곳곳에서 나타났다.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해 허둥지둥 출근하다 넘어지기도 하고, 퇴근길엔 혼자서 터벅터벅 걸으며 허전함을 곱씹었다.

드디어 동원 훈련을 마친 꼼꼼이가 귀가하는 날.

훈련 떠나던 날 새벽의 퍼포먼스에 맞먹을 깜짝 이벤트가 필요했다.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 찾아낸 것은 '냄푠 위한 사랑의 맛-뽀글뽀글 된장찌개'.

슈퍼마켓으로 달려갔다. 회사 앞 식당에서 맛본 된장찌개 내용물을 하나 둘 장바구니에 담았다. '양파.감자.호박.풋고추.파.두부, 그런데 국물을 어떻게 만드나. 된장만 넣으면 되나.' 이때 눈 앞에 환하게 들어오는 상품 하나. 간을 할 필요없이 생수에 풀어넣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양념된장이다. 주변을 둘러보고 슬그머니 장바구니에 담았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일단 뚝배기에 물을 붓고 '나의 비밀' 양념된장을 듬뿍 떠넣었다.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다음은 양파.감자.호박.파를 썰어넣었다.

앗, 그런데 이게 웬일. 된장찌개가 끓기 시작하자 국물이 넘치는 게 아닌가. 불을 줄이고 국자로 국물과 야채를 덜어냈다. 다시 불을 켜고 된장찌개의 하이라이트인 두부를 썰어넣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으악. 또다시 국물이 넘쳐 버렸다. 다시 불을 줄이고 국물을 떠내며 간신히 찌개를 완성했다. 이어 '아픈 상처'를 숨기기 위해 허겁지겁.허둥지둥거리며 서둘러 레인지를 닦고 있는데 꼼꼼이가 들어왔다.

"어, 이게 무슨 냄새야?" 의아한 표정을 짓는 꼼꼼이를 보니 3박4일 동안의 생과부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며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나라도 지켜야 하지만 나도 꼭 지켜줘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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