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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그레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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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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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팀에 졌지만 끝까지 선전한 인터내셔널팀이 호주 응원단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스티븐 보디치, 대니 리, 제이슨 데이, 브랜든 그레이스, 통차이 짜이디, 애덤 스콧, 찰 슈와첼, 아니르반 라히리. [인천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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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든 그레이스

브랜든 그레이스(27·남아공)가 5전 전승을 거두며 프레지던츠컵의 스타로 떠올랐다.

남아공 그레이스 5전5승 퍼펙트
PGA투어 1승도 없지만 깜짝 활약
우즈·퓨릭 등 이어 5번째 대기록
1무4패 부진 데이 대신 에이스 역할
연합팀 1점 차 석패 명승부 이끌어

 유러피언 투어에서 활약하는 그레이스는 국내 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레이스는 11일 인천 송도 잭 니클라우스 골프장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 싱글 매치에서 11번째 주자로 나섰다. 인터내셔널팀 캡틴 닉 프라이스(짐바브웨)는 “그레이스에게는 요만큼의 의심도 없다”며 무한 신뢰감을 드러냈다. 한국 팬들도 신들린 활약을 펼치고 있는 그레이스에게 환호했다. 그레이스와 매트 쿠차(37)의 매치에는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22)-마크 레시먼(32·호주) 경기보다 더 많은 갤러리가 몰렸다. 팬들은 “원더풀 그레이스!”를 연호하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그레이스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절정의 샷감을 뽐냈다. 전반에 보기 없이 버디 2개를 낚으며 완벽한 플레이를 펼쳤다. 9번 홀이 끝나고 5홀 차로 앞서자 “역시 에이스 그레이스”라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후반엔 다소 흔들렸다. 12번 홀과 16번 홀 보기로 2홀 차까지 좁혀지자 상황이 묘하게 흘러갔다.

 그렇지만 그레이스는 경기를 마치고 그린에 모두 모인 동료와 팬 앞에서 에이스다운 실력을 뽐냈다. 17번 홀(파3)에서 그레이스가 가볍게 티샷을 그린에 올리자 찰떡궁합을 과시했던 루이 우스트이젠(33·남아공)을 비롯한 인터내셔널팀 선수들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고(Go) 그레이스”를 외쳤다. 미국팀에는 솔하임컵 캡틴을 맡았던 줄리 잉크스터(55)까지 가세해 기를 불어넣었지만 그레이스의 고공행진은 꺾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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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환호와 박수 속에 그린에 도착한 그레이스는 가볍게 파를 낚으며 2홀 차로 승부를 마무리 지었다. 한 번도 리드를 빼앗기지 않았던 그레이스에게 대니 리(25) 등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고,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2년 전 4전 전패 굴욕을 당했던 그레이스는 철저한 준비 끝에 대반전에 성공했다.

 한 대회에서 5승 전승이 나온 건 1996년 마크 오메라(58·미국)와 1998년 마루야마 시게키(46·일본), 2009년 타이거 우즈(40·미국), 2011년 짐 퓨릭(45·미국)에 이어 5번째다. 그레이스는 “캡틴이 뒷조로 넣은 의도를 알았고,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정신력으로 잘 버텼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러피언 투어에서 뛰며 6승을 거둔 그레이스는 남아공의 차세대 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직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우승은 없지만 올해 US오픈 공동 4위, PGA 챔피언십 3위를 차지하며 주목을 끌었다. 그레이스와 우스트이젠 ‘남아공 듀오’의 무적행진 덕분에 인터내셔널팀은 첫날 열세를 딛고 둘째 날부터 미국팀을 매섭게 추격할 수 있었다.

 일방적인 응원을 펼친 갤러리 덕분에 인터내셔널팀은 강풍과 비가 쏟아진 궂은 날씨 속에서도 강한 정신력을 발휘했다. 모두가 투사 같았다. 4조의 마쓰야마 히데키(23·일본)가 J.B. 홈즈(33)를 상대로 마지막 홀에서 멋진 칩샷에 이어 버디를 낚았을 때도 천둥같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아시아 국가에서 온 팬들은 모국의 스타들을 응원했고, 통차이 짜이디(46·태국)도 버바 왓슨(37)과 무승부를 이루며 분전했다. 인도 최초의 출전 선수 아니르반 라히리(28·인도)도 잘 했다. 팬들은 홀 곳곳에 배치된 전광판을 통해서 라히리의 마지막 홀을 지켜봤다. 너무나 쉬워 보였던 60cm 버디 퍼트를 라히리가 놓치자 골프장을 뒤흔드는 엄청난 탄식이 터져나왔다. 한 마음으로 모두가 아쉬워했다. 배상문도 전광판을 통해 이 장면을 확인한 뒤 마음이 더 초조해졌다. 라히리가 크리스 커크(30)에게 지면서 양팀의 점수 차는 12.5-14.5로 벌어졌다. 라히리는 “신중하게 했는데 퍼트 라인을 잘못 읽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결국 압박감 속에 마지막 조 경기를 했던 배상문도 18번 홀에서 무너지면서 인터내셔널팀의 역전승 꿈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인천=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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