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복마전 FIFA의 정몽준 징계, 어이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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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마피아보다도 썩었다”는 비판을 받아온 국제축구연맹(FIFA)이 그런 욕을 먹어도 쌀 수밖에 없는 행동을 했다. 8일 정몽준 FIFA 명예부회장에게 6년간 자격정지 처분을 내린 것이다. FIFA는 당초 정 명예부회장이 5년 전 한국의 2022 월드컵 유치를 돕기 위해 “기금을 조성해 축구 저개발국을 지원하겠다”는 편지를 각국에 보낸 것을 문제 삼아 윤리위원회에 회부했다. 그러나 윤리위의 최종 선고에선 그런 내용이 빠지고 조사 비협조와 비윤리적 태도가 징계 사유로 적시됐다.

 윤리위 스스로 정 명예부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시인한 셈이다. 게다가 윤리위는 거액의 뇌물 수수와 배임·횡령 의혹으로 수사받고 있는 제프 블라터 FIFA 회장과, 블라터로부터 24억원을 받은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 회장에겐 90일간 자격정지를 선고했다. 정 명예부회장에 비해 형평성을 현저히 잃은 솜방망이 징계다.

 징계로 인해 정 명예부회장은 내년 2월 차기 FIFA 회장 선거 도전이 좌절될 위기에 처했다. 서구 언론에선 회장직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블라터의 음모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차기 회장 선거에서 당선자가 나오지 못하도록 FIFA 윤리위에 힘을 써 정 명예부회장의 발목을 묶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진위를 단정하긴 힘들다. 그러나 정 명예부회장에 대한 과중한 징계는 FIFA가 블라터 같은 서구 축구 귀족들에 장악된 복마전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금이나 감사도 없이 수조원의 예산을 주물러온 FIFA는 1990년대 이후 월드컵 중계권 리베이트 등을 통해 1억5000만 달러 이상을 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FIFA를 바로잡겠다고 회장 선거 출사표를 던진 정 명예부회장이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고강도 징계를 당했다. FIFA를 혁명 수준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투명한 감시 체제 구축은 물론 ‘1국 1표제’인 월드컵 운영방식의 혁명적 전환도 검토해야 한다. 또한 우리 체육계도 FIFA 같은 부패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번 기회에 살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