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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나누면 '공수처' 불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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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설치를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다. 4월 임시국회에서도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정부 여당은 공수처 설치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한나라당과 민노당은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며 상설 특검제 도입을 주장한다. 검찰은 심정적으로 거북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가운데 대법원과 법무부가 헌법적 근거 등 위헌소지가 있다는 견해를 밝혀 논란을 더해가고 있다. 한편 검찰과 경찰은 대통령 공약사항의 하나로 현재 수사권조정협의회를 구성해 대토론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서 검찰은 먼저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공수처의 수사대상 즉 차관급 이상 공무원, 국회의원, 지자체장, 법관 및 검사, 장관급 장성, 경찰 경무관 이상, 감사원.국정원.국세청 국장급 이상,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 이상(전직 포함) 등을 볼 때 현 검찰의 중점 수사대상과 일치하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이제까지 검찰의 중점 수사분야가 국민의 기대수준에 못 미쳐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수사체계에 있어 검찰의 역할은 정치범죄를 포함한 고위 공직 비리, 대형 경제사범, 사회구조적 범죄 등의 수사에 집중하면서 법의 준엄성을 드높이는 범죄사건의 기소와 공소 유지다. 그런데 이제까지 검찰은 그 본래의 역할보다 일반 범죄 수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경찰수사를 소위 지휘.통제하는 데 힘을 쏟다 보니 본래의 업무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일반 범죄 수사는 경찰이 책임지고 그 수사 결과에 대한 이해관계인의 이의가 있는 경우에 한해 검찰의 기소과정에서 수사를 보완하도록 한다면 현재 검찰의 일이 반 이상 줄게 되면서 검찰은 본래의 임무에 보다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검찰의 경찰에 대한 사후통제로서도 국민의 인권 보호는 충분하다. 고위 공직자 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핵심은 역시 검찰이 되는 것이 원칙이다. 대통령 직속기구로서의 공수처는 그 구조상 정치적 악용 우려가 있고 옥상옥으로 기존의 수사체계 전체를 흔들면서 위헌성마저 있다. 대통령의 측근 비리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은 대통령 직속 기구로는 국민이 신뢰하기 어려우므로 특검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사정기관의 원칙은 검찰과 경찰인 것이다. 홍콩의 염정공서나 싱가포르의 부패행위조사국은 검찰이 없는 도시경찰국가의 예외적 현상이다.

만약 검찰과 경찰이 바로 서기만 한다면 고위 공직자에 대한 부패 수사는 따로 문제될 게 없고, 바로 서기 위한 기본 조건은 상호 독립적이고 경쟁적인 관계인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공수처가 아니라 경찰이 바로 검찰의 부패도 수사할 수 있고 견제도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수사 구조의 가장 큰 문제가 검찰이 수사권을 독점하고 경찰의 일까지 다하려는 검찰의 경찰화 현상이다. 그것 때문에 검찰을 견제할 방법도 없고, 수사력은 중복돼 낭비되고, 경찰 수사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와 같은 수사 구조였던 일본의 검찰과 경찰이 전후 국민의 절대적 신뢰를 회복한 요체가 바로 '맥아더'에 의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었음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진행 중인 검.경 간의 수사권조정협의회 결론이 중요하고, 공수처 설치 논의는 거기서부터 재검토돼야 한다고 본다.

이관희 경찰대 교수.한국헌법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