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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TALK] 지위 낮으면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 … ‘헬조선’ 낳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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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40)은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작가다. 이 책은 도발적인 제목과 젊은 여성의 이민을 다룬 내용으로 최근의 ‘헬조선’ 신드롬을 언급할 때마다 거론된다. 헬조선이란 ‘헬’(Hell·지옥)과 한국을 가리키는 ‘조선’의 합성어다. 경제적 약자의 아픔을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외면하는 현실에 대한 야유다. 장강명은 이 작품 하나로 뜬 작가는 아니다. 최근 문학상을 잇달아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11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표백』을 시작으로 지난해 『열광금지, 에바로드』가 수림문학상을, 올해 『2세대 댓글부대』(11월 출간 예정)로 제주 4·3평화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그는 주로 2030세대의 문제를 다뤘다. 이민, 오타쿠, 학교 폭력, 젊은이의 자살 등을 소재로 삼았다. 지난달 22일 그를 만났다.

『한국이 싫어서』 저자 장강명을 만나다

성공 못하면 감수해야할 모멸감 너무 커
명문대·대기업 악착같이 달려들 수밖에
상호 존중 문화만 돼도 스트레스 없어져

-『한국이 싫어서』가 화제가 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다들 한국 사회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사회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을 기다려온 듯하다. 애국주의 교육을 많이 받아왔기에 국가가 싫다는 말을 함부로 못 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나. 약간의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을 준 게 아닌가 싶다.”

-최근 ‘헬조선’ ‘노오력’ ‘지옥불반도’ ‘흙수저’ 같은 말이 유행한다.

“젊은 세대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 아니라 좌절감을 주는 사회로 비춰진다. 기성세대가 이들에게 ‘좀 더 노력하라’고 하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그래 봤자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다. 현실에 좌절하고 사회로부터 모욕을 당했으니 반대로 그런 사회를 모욕하겠다는 행위로 보인다.”

-현재 한국 사회 공동체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사실 경제 성장 둔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안에서 금수저, 흙수저로 불리는 계급 고착화도 다른 나라에 비해 아주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한국 사람은 자기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으면 사람 취급을 안 한다는 데 있다. 이들이 감수해야 할 모멸감이 너무 크다. 굶어 죽는 시대가 아닌데도 명문대·대기업에 악착같이 들어가려는 것은 소위 말하는 ‘사회적 성공’을 못한 사람들에게 너무 큰 모멸감을 주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 때문이다.”

-해법이 있을까.

“경제 성장 없이도 상호 존중 문화가 정착되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을 없앨 수 있다. 나이 어리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욕하고, 서비스업 종사자라고 하인처럼 부린다. 모르는 사람한테 존댓말 쓰는 일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이는 내 신조이기도 하다.”

-2030세대의 문제를 주로 다룬 이유는.

“의도하지 않았다. 내 고민을 썼다. 나는 의미 있게 똑바로 살고는 싶은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늘 있다. 2030세대도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거 같다. 어느 문예지에서 나를 가리켜 ‘청춘의 대변인’이라고 표현했던데 부담스럽다. 물론 굳이 세대를 나눠 따지면 2030에 관심이 많기는 하다. 산업화, 민주화 시대가 끝나고 (사회적) 과업이 없는 세대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세대를 대변하고 싶지는 않다. 난 앞으로도 내 고민을 쓸 거다. 그 고민에 4050 또는 노년층이 호응할 수도 있다.”

-일간지(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다. 전업작가가 되면 현실 문제로부터 유리될까 걱정이라면서도, 2013년 전업작가가 됐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쓰려니 너무 힘들었다. 『표백』 『뤼미에르 피플』을 쓸 때까지도 겸업할 생각이었다. 전업 작가를 하면 먹고 살기 힘들 거 같기도 했다. 그러나 기자 연차도 쌓이고 육체적으로 나이도 들고(웃음). 안 되겠다 싶었다. 당대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쓰려는 자세는 지금도 추구하고 있다. 아내와 상의해 작가로 해마다 벌 액수를 정하고 사표를 썼다. 내가 받던 연봉의 절반이 안 되는 액수다. 그 돈을 벌지 못하면 작가 생활을 접고 다른 직업을 가지기로 했다. 그 약속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난해 그 액수를 넘기려고 미친 듯이 썼다. 올해도 넘겼는데 다음 해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해마다 주목받는 신진 작가는 늘 있었다. 그들이 모두 오래가진 못했다. 나도 잘 모른다. 그렇기에 계속 쓸 거다.”

-앞으로의 계획은.

“다음 작품은 남북 관계를 소재로 했다. 기자로 일할 때부터 염두에 뒀다. 원고지 2000매 분량이 될 것이다. 『한국이 싫어서』 독자 중 (작품의 깊이가) 너무 얄팍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동감한다. 500매에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기 힘들다. 더 깊고 스케일이 큰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고 싶은 욕심이 있다. 언젠가는 논픽션, 그중에서도 르포르타주를 쓰고 싶다. 사회부·정치부 기자를 꽤 했다. 트위터 같은 SNS에 실린 주장 담긴 구호를 보면서 현실과 현장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떤 문제든 취재해 보면 한쪽 말이 다 옳은 경우는 없더라. 이런 현실을 담고 싶다.”

글=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장강명 작가가 추천하는 공동체를 다룬 도서
(
글=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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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민음사

1930년대 미국, 대공황과 흉년으로 터전에서 쫓겨나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조드 일가의 이야기.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조드 가족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진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공동체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반어적으로 역설하는 책. 제목의 무게감에 눌려 지레 포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읽는 재미가 대단해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신참자
히가시노 게이고, 재인

귀엽고 아기자기한 추리소설. 다 읽고 나면 미스터리보다는 배경인 도쿄의 닌교초(人形町) 거리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우리로 치면 인사동 골목쯤이다. 상인들의 오해를 풀어주는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동네 신참자’인 주인공 형사다. 그러나 주민들이 원래 품고 있던 소박함과 선량함이 아니었던들 매번 그런 화해가 가능했을까. 이런 골목, 이런 거리에서 이런 이웃들과 살고 싶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부북스

조지 오웰은 30대 초반의 청년일 때 ‘공업지대 노동자들의 삶을 취재해 달라’는 출판사의 요청을 받고 영국 북부로 떠났다. 오웰은 빈민가 하숙집에서 자고, 탄광에 직접 들어가면서 이 걸작 르포르타주를 썼다. 몰락한 상류층이 체면치레에 목숨을 걸거나 저소득층이 ‘저렴한 사치품’에 열광하는 광경은 너무 낯익어 도리어 기묘한 기분마저 든다. 은근히 유머도 많은 책.

잠실동 사람들
정아은, 한겨레출판

실제로 잠실동에 살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작가가 치밀한 관찰력으로 2015년 자기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작가의 시선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서, ‘그래, 다들 힘들게 사는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과 서글픔마저 느끼게 된다. 15명에 이르는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도대체 왜 다들 이렇게 힘들게 살게 됐지’ 하고 자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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