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勞-政대립 해법 난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올해 노사분규가 노정(勞政) 대결로 변질되고 있다.

예년에는 임금 등 노사 간에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쟁점으로 나왔으나 올해는 정부가 추진해온 제도개선 사항이 전면에 부각된 것이다. 예컨대 ▶주5일 근무제▶비정규직 차별 철폐▶근골격계 질환 예방 등의 쟁점에서 사(使)는 빠진 채 노(勞)와 정(政)이 맞붙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주5일 근무제는 분규 현장의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노동계의 요구사항은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5일 근무제다. 기업으로서는 난감하다. 현행 근로기준법 체제에서 주5일 근무제를 받아들이면 휴일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사례연구에 따르면 K사의 경우 연간 휴가.휴일수가 1백36일(주휴, 토요 휴무, 공휴일, 약정 휴일, 연월차)이지만 주5일 근무제 도입 후에는 1백60일로 늘어난다.

만일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이 휴일.휴가 일수를 정비하지 않고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면 그 파장은 모든 산업에 미칠 전망이다. 하청기업은 물론 다른 업종과 중소기업의 노조들도 이를 기준으로 협상을 벌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이를 감안, 휴일수를 조정해 놓았다. 노동부 관계자는 "주5일제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너무 많은 휴일과 휴가 때문에 산업경쟁력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측으로서는 단협으로 주5일 근무제를 받아들이면 주5일제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에도 법을 이유로 이미 맺은 단협을 파기하거나 고칠 수 없다. 이 때문에 일부 대기업은 주5일제 관련법안의 국회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는 노사정위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주들은 법이 마련되거나 노사정위의 합의문이 나올 때까지는 이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사정위의 합의 없이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노동의 유연성만 해친다는 것이다.

노사정위는 공익위원안을 마련해 본회의에 올렸지만 경총 등 사측 위원들의 반발이 거세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익위원안이 비정규직을 상용직원으로 전환토록 하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근골격계 질환 예방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다음달 1일부터 사용자가 예방의무를 취하도록 돼 있다. 다만 규제개혁위가 18일 질환의 인정범위를 좁히고 치료기간도 줄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질환인정 및 예방작업의 범위 등을 마련 중인 노동부도 좀 더 까다롭게 기준을 정할 움직임이다. 이는 "통증을 호소하면 환자로 인정하라"는 노조 측 요구와 배치되는 것이어서 대립의 새 불씨가 될 가능성도 있다.

김기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