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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무릎 아프고 눈도 침침 … 참고 일하다 ‘농부병’ 키웠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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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은 한국인의 고향이자 마음의 안식처다. 하지만 농촌의 삶은 생각하는 것만큼 여유롭고 건강하지만은 않다. 농업은 국제노동기구가 광업, 건설업과 함께 꼽은 3대 위험산업이다. 반복되는 작업과 고된 노동, 보이지 않는 화학물질과 자외선에 고령화되는 농촌 건강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신체 이상을 가리켜 ‘농부병’이라고 한다. 도시민에겐 다소 생소하지만 고향을 지키는 부모님의 깊은 주름과 굽은 허리, 침침한 눈은 바로 이 ‘농부병’ 때문일 수 있다. 도시민은 외면하고, 농업인은 참고 견디는 농부병을 지역별 농업안전보건센터 자료를 토대로 정리했다.

건강 위협받는 농촌 부모들

농업인 허리 통증 유병률 도시민의 2배

농부병은 농업 활동으로 인한 신체 이상 증상을 말한다. 가장 흔한 것은 근골격계 질환이다. 농업인과 도시민의 근골격계 질환 유병률은 각각 46.5%, 19.5%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소화기·순환기 등 다른 만성질환과 비교했을 때 유병률의 차이는 4배 이상이다(농촌진흥청, 2004년). 빡빡한 농사 일정, 이로 인한 휴식 부족이 근골격계 질환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허리질환이 대표적이다. 강원대병원 농업안전보건센터가 강원 지역 40~60대 농업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매년 허리 통증을 일주일 이상, 한 달에 한 번씩 반복적으로 겪는 ‘유증상자’ 비율은 43.5%에 달했다. 비농업인의 유증상자 비율은 15.7%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허리질환에 대한 농업인의 인식 부족이다. 예방·관리법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참고 일하다 병을 키운다. ‘몸의 기둥’인 허리 이상은 주변에 뼈와 근육은 물론 몸 전체의 균형을 깨뜨리며 전신질환으로 발전한다. 강원대병원 재활의학과 백소라 교수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옮기는 것 외에 밀고 당기는 자세 모두 허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하지만 이런 자세가 허리 부담을 키우는 것을 아는 농업인은 고작 10%에 불과하다”고 우려했다.

특히 절반 이상(51.6%)이 유증상자인 여성의 경우에는 허리 건강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백 교수는 “허리를 40~60도 구부릴 때 근육 부담이 가장 크다. 의식적으로 허리를 펴고, 운동을 통해 복근· 등배근 등 ‘코어 근육’을 강화하면 하중이 분산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조언했다.

40대부터 찾아오는 무릎 관절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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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화가 더딘 비닐하우스·밭농사는 대부분 사람의 몫이다. 채소나 과일 재배에는 무릎과 허리를 굽히는 작업이 빈번하다. 농업인의 70%는 이런 자세로 하루 4시간 이상 일한다. 조선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이철갑 교수는 “무릎을 굽히거나 쪼그릴 때 관절이 받는 압력은 걸을 때의 4배, 등산 중 무릎이 받는 압력보다 2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농업인에게 무릎 관절염이 흔한 이유다.

국민건강영향조사(2011년)에 따르면 전체 농업인의 15.1%, 여성 농업인의 24.7%가 무릎관절염을 앓는다. 사무직의 6~7배, 영업직보다 2배 수준이다. 심지어 공사 노동자 같은 단순노무직보다 유병률이 높다. 조선대 농업안전보건센터가 농부 411명의 무릎 MRI를 촬영한 결과, 70세 이상 남성의 62.5%, 여자는 84.0%가 골관절염을 앓았다.

젊은 귀농·귀촌 인구도 안심할 수 없다. MRI 검사 결과, 40대 10명 중 1명(11.0%)은 골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대부분 X선 사진에는 정상 소견을 보였거나 통증 등 이상 증상이 없는 경우였다. 이 교수는 “연골은 신경과 혈관이 없어 손상을 즉시 자각하기 어렵다. 다리가 쉽게 붓거나 통증이나 힘 빠짐 등 이상 증상을 느끼면 즉시 정밀진단을 받아 증상 악화를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릎 관절염 초기에는 약물치료나 흉터가 거의 없는 관절경 수술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말기로 악화되면 인공관절로 손상된 연골을 교체하는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

이 교수는 “무릎 관절염은 자연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의료비를 아끼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작업 의자, 포수가 사용하는 무릎쿠션 등 보조도구나 짧게 자주 휴식을 취하는 것이 무릎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다.

어깨질환은 특히 팔을 높게 들어야 하는 과수 농업인에게 흔하다. 경상대병원 농업안전보건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과수 농업인의 회전근개 파열 유병률은 58%로 일반 농업인(53%)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게다가 이 중 11.5%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전층파열이었다. 경상대병원 예방의학과 박기수 교수는 “대부분의 농업인은 통증을 ‘나이 탓’ ‘내 탓’으로 돌리며 참는데, 생활습관 교정이나 운동을 통한 근력 강화로 얼마든지 증상을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전근개 파열은 팔을 어깨 위로 올릴 때, 낮보다 밤에 통증이 심해지는 특징이 있다. 날개뼈 주변 근육이 움푹 들어가 보이기도 한다. 회전근개는 한번 끊어지면 저절로 붙기 어렵고, 방치하면 인접 힘줄까지 도미노처럼 끊어지기 때문에 조기 대처가 필수다. 경상대병원 예방의학과 박기수 교수는 “힘줄은 자연히 붙지 않는다. 농사를 짓지 않을 때 통증이 없다고 어깨가 저절로 낫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다리 같은 보조도구를 활용해 어깨 부담을 줄이고, 초기부터 약물·물리치료를 꾸준히 받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태양, 농약 등 보이지 않는 위협도 많아

농촌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이 존재한다. 자외선으로 인한 안과·피부질환은 그중 하나다. 충북대병원 농업안전보건센터가 충북 지역 농업인과 도시민(청주시)의 60세 미만 백내장 유병률을 비교한 결과 각각 15.8%, 8.3%로 농업인이 1.9배 높았다. 충북대병원 예방의학과 김헌 교수는 “비교적 젊은 농업인에게 노화 현상인 백내장이 더 많이 발생했다는 점은 야외활동이 많은 농업인에게 안과질환이 더 심각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백태’로 알려진 익상편은 농업인 유병률(20.7%)이 도시민(8.3%)의 2.5배에 달했다.

피부 그을림, 일광화상 등 농업인의 주요 피부질환을 열심히 일한 ‘훈장’으로 봐선 안 된다. 이는 오히려 태양이 새긴 경고다. 강한 자외선이 편평세포암·기저세포암·흑색종과 같은 피부암을 유발해서다. 실제 충북대병원 조사에서 피부암 유병률은 도시민(인구 10만 명당 4.4명)보다 자외선 노출시간이 긴 농업인(10만 명당 5.6명)에게 더 높았다. 김 교수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챙이 큰 모자나 선크림을 이용하면 피부가 산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 3년간 비닐하우스 오이 농사를 지은 이모(53·여)씨. 하루 10시간을 하우스에서 보내면서 콧물·기침·가래를 달고 살았다. 병원을 찾은 그는 알레르기성 비염과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진단을 받았다. 담배 한 번 피우지 않았던 그에겐 날벼락 같은 얘기였다. 한양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이수진 교수는 “밀폐된 비닐하우스나 축사 등에서 일하는 농업인은 먼지와 농약, 가스로 인해 호흡기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말했다.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것은 공기 중의 포자, 씨앗, 농약 속 화학물질, 미세먼지 등으로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한양대 농업안전보건센터가 농업인 963명을 조사한 결과 남성은 채소 재배 시 COPD 유병률이 비교적 높았고, 여성은 축산업이나 꽃 재배를 하는 경우 알레르기 비염·천식 유병률이 높았다. 또 농약을 살포하는 농업인의 천식 발생 위험도는 그렇지 않은 농업인보다 최대 56% 높았다. 이 교수는 “강제 환기 시설이나 공기여과장치 등으로 호흡기를 자극하는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농약은 호흡기와 피부를 통해 인체에 흡수되는 만큼 방제복, 보안경 등을 착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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