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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은 공약, 김 대표는 순리를 지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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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청와대와 친박계 그리고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공천제도 다툼을 보면 집권세력의 국정 책임감에 커다란 의문이 든다. 임기 후반부를 시작한 박근혜 정권은 내외의 어려운 환경에 싸여 있다.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을 계속 위협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유엔 연설에 반발해 이산가족 상봉을 취소할 수 있다고 공언하기도 한다.

 국내적으로는 노사정이 어렵게 합의한 노동개혁을 입법화해야 하는 중요한 숙제가 있다. 어제는 후반기 국정감사가 시작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당 대표가 어제 하루 모든 일정을 취소하면서 청와대와 맞섰다.

 집권세력의 공천 갈등은 대통령이나 김 대표나 원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해 2월 새로운 공천제도를 당헌으로 규정했다. 당원과 국민이 적당한 비율로 참여하는 ‘국민참여 경선’ 제도다. 과거 정권에서 공천심사위원회라는 틀을 이용해 권력이 개입했던 전략공천은 원칙적으로 배제됐다. 새누리당은 이 제도로 지방선거를 치렀으며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런 당헌이 버젓이 있음에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룰(rule)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지방자치단체장과 달리 국회의원은 차기 대권을 포함한 권력의 운용과 깊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새로운 제도를 통해 자기 세력을 늘리려 한다. 김 대표는 지난해 7월 대표경선에서 완전국민경선(오픈 프라이머리)을 공약했기 때문에 이를 관철하려고 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였던 2012년 11월 “국회의원 후보 선출은 여야가 동시에 국민참여 경선으로 선출하는 것을 법제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법제화는 되지 않았지만 현재 새누리당 당헌은 ‘국민참여’를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공약의 핵심 취지는 권력이 개입했던 전략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정·청은 기본적으로 협력체제를 유지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청와대가 당의 공천제도에 의견을 피력할 수는 있다.

 하지만 먼저 ‘전략공천 배제’라는 원칙을 천명하고 논의에 가세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전략공천의 부활을 통해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청와대 참모를 포함해 친박 인사들이 특정 지역구에 공천을 받기위해 뛰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권력자의 의중에 따라 민의와 무관한 공천이 되풀이 된다면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김 대표도 공약이었던 완전국민경선이 어려워지자 안심번호를 이용해 전화여론조사로 공천하는 방안을 단독으로 추진해서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투명한 공천 논의를 주도할 책임이 있다.

 대통령이나 김 대표나 공천을 통해 세력을 확대하려는 유혹을 느낄 것이다. 이런 유혹을 접고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김 대표는 당내 합의라는 순리를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