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소비자 실망시킨 한국 블랙 프라이데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국 블랙 프라이데이 주간이 시작된 1일 장대비 속에서도 전국의 백화점엔 오전부터 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상품과 할인율이 빈약해 소비자들을 실망시켰다. 이번 행사는 당초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참여 점포 수가 2만7000여 개, 할인 폭도 평균 50~70%에 달하는 범국가적 할인행사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요 가전제품과 명품·화장품 등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고, 대기업 패션업체들은 11월 이후 사용 가능한 금액할인권을 제공하는 등 변칙적 할인율을 적용한 곳이 많았다. 대형마트도 3만여 개 제품 중 100여 개만 할인행사에 참여해 실속이 적었다.

 이에 실망한 소비자들이 인터넷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블랙 구라이데이’ ‘호갱데이’ ‘정기세일과 다른 게 무엇이냐’는 등 비판 글과 사진을 올렸다. 한데 유통업계의 불만도 이에 못지않았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한 달 남짓 안에 행사 이름과 할인율까지 정해서 관제행사를 하라고 통보하는 비상식적인 일은 처음 겪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우선 시기적으로 10월은 신상품을 팔아야 하는 기간이다. 우리나라 백화점 정기세일은 1, 4, 7, 10, 11월에 열리지만 4, 10월은 간절기 세일로 남은 전 시즌 상품만 세일을 하는 터라 가장 규모가 작다. 그런데 정부가 중국의 국경절을 겨냥해 유통업계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날짜를 잡아 강행했다는 것이다. 또 국내 백화점은 미국 백화점처럼 직매입을 하는 게 아니라 수수료 매장이어서 입점업체들이 세일에 동의해야 한다. 유통업체든 제조업체든 세일을 위해 1년 전부터 기획상품 준비와 할인율 계획 등을 세우는데 갑작스러운 할인행사에 동원할 상품도 없고, 제조업체의 협력을 받아내기도 어려웠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같은 경기침체기에 전 유통업체가 참여하는 대대적 할인 축제로 소비를 붐업시킨다는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준비 없는 관제행사로는 오히려 국내 유통 축제에 대한 불신감을 초래해 앞으로 이런 축제를 활성화하기 어렵게 할 수도 있다. 유통 축제는 관련 업계가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도록 맡기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