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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북한 핵 집착 ‘히로시마 원폭 위력’ 실감한 김일성이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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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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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지난 5월 평양시내 중심부에 새로 건설한 국가우주개발국 위성관제종합지휘소를 방문해 수행한 간부들과 내부시설을 지켜보고있다. 북한은 이달 들어 4차 핵 실험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인공지구위성’(장거리 로켓) 발사도 감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 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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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보당국의 대북감시망은 요즘 함경북도 산골마을인 풍계리를 주목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핵 버튼을 자꾸 만지작거리기 때문입니다. 조선원자력연구원도 15일 “언제든 핵뢰성으로 대답할 만단(만반)의 준비가 돼있다”고 위협하고 나섰죠. 이를 두고 4차 핵 실험을 시사한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3차 실험 때도 “자주의 핵뢰성을 장쾌하게 울렸다”고 북한은 주장했습니다.

“65년 원자로 도입 전 구체화 가능성”
핵무기 7개 만들 플루토늄 보유 추측
김정은이 내놓은 ‘경제·핵 병진노선’
김일성 ‘경제·국방 병진노선’과 흡사

풍계리는 2006년10월 첫 북핵 실험에 이어 2009년5월과 2013년2월 추가 실험이 감행된 장소입니다. 지하갱도 입구와 주변은 미국의 키홀(KH-12) 첩보위성의 단골 촬영지가 됐다는군요. 핵 실험 때는 수 백 미터 갱도를 파고 실험장비를 설치합니다. 콘크리트로 매설하는 과정도 거치는데요. 퍼낸 흙의 양이나 차량·인력의 움직임으로 진척상황을 파악할 수 있죠.

 아직 풍계리에서 특이 징후는 포착되지 않는다는 게 정보당국의 설명입니다. 미국의 대북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도 “지난 8월 이후 변화가 거의 없는 상태”라고 전합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북한의 핵 실험을 제대로 예측한 적이 없어서죠. 2004년9월에는 양강도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2.6의 진동을 핵실험으로 오인한 적도 있습니다.

 북한의 핵 개발 역사는 1965년 구소련에서 IRT-2000으로 불리는 연구용원자로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일성 주석이 훨씬 이전부터 핵 개발 구상을 구체화했을 것이란 주장도 제기됩니다. 미국의 핵 투하에 일본 제국주의가 항복하고, 조국이 해방되는 걸 목도하며 위력을 실감했을 거란 얘기입니다. 전문가들은 핵 개발에는 기술과 자금 외에 최고지도자의 의지가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代)를 이은 집착이 북핵 개발의 원동력이었다는 겁니다.

 통치유산으로 핵을 넘겨받은 김정은 제1위원장도 핵 물질 양산과 소형화·경량화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핵무기 7개를 만들 수 있는 40㎏의 플루토늄을 추출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 당국은 추산합니다. 지난해엔 대동강변에 46층짜리 현대식 고층아파트 2개동을 지어 핵 개발 기술자와 연구교수들에게 선물했죠.

 김정은이 2013년 3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내놓은 ‘경제·핵 병진노선’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핵 보유로 재래식 무기에 투입될 군사비를 덜게됐으니 이를 민생경제에 돌리겠다는 설명인데요. 하지만 국방비 비중은 16.0%(실제는 은닉예산 포함 30% 수준)에서 지난해 15.9%로 겨우 0.1% 포인트 줄어드는데 그쳤다는 게 예산결산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대로 가면 김일성이 1962년12월 당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국방 병진노선의 전철을 밟을 수 있습니다.

 북한의 이번 핵 위협은 판문점 남북 고위접촉 직후 나왔는데요. 김정은 제1위원장의 눈길이 서울쪽에서 워싱턴으로 옮겨가는 형국입니다. 익명을 원한 정부 당국자는 “추석을 계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 합의로 남북 유화분위기를 조성해놓고, 북·미 평화협정 체결 발걸음을 시작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25일 미·중 정상회담을 지켜본 뒤 다음 수순을 밟으려할 것이란 예상인데요.

 문제는 리더십과 경륜이 부족한 김정은이 오판할 경우 폭주를 막을 수 없다는 겁니다. 후견국을 자처하는 중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은 17일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거나 예전같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의 핵 실험 강행은 8·25 남북 합의에 규정한 ‘비정상적 사태’에 해당합니다. 북한이 극도로 거부감을 드러낸 대북 심리전 방송을 재개할 수 있는 합의위반 상황인 건데요. 그렇다고 당장 스피커의 스위치를 또 올리긴 쉽지 않습니다. 내달 15일로 잡힌 금강산 상봉의 판을 깰 수 있다는 점에서죠. 모처럼 남북관계 돌파구를 연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영종 기자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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