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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밥상에 짜고 쓴 음식 왜 늘어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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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만 되면 유독 고독하고 우울해하는 이가 많다. 이 같은 '계절성 우울증'은 입맛마저 뚝 떨어뜨린다. 온갖 '먹방' 프로그램에서 셰프가 맛있다는 메뉴를 추천하지만 미각이 둔해지면 '그림의 떡'이다. 수확의 계절인 가을 제철 음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라도 미각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미각의 비밀
살찐 사람은 단맛에 둔감
설탕 과다 섭취로
당뇨병 걸릴 가능성 커

주부 박선희(43·가명·서울 대치동)씨는 최근 1주일 새 체중이 2kg 줄었다. 입맛이 없어 식사량이 줄어들어서다. 아침저녁으로 다소 쌀쌀해지면서 감기에 걸렸다. 그런 데다 평소 앓던 비염도 심해져 냄새와 맛을 느끼기 힘들다.

미각을 느끼는 과정을 알면 미각이 둔해진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맛을 느끼는 걸까. 혓바닥에는 오돌토돌 튀어나온 돌기가 있다. 바로 '혀 유두'다. 혓등의 점막에 다양한 모양으로 솟아 있다. 혀 유두 옆면에 '미뢰'라는 미각 수용체가 있다. 미뢰에는 각각 20~30개의 미세포가 있다. 음식물이 혀에 닿으면 그 맛을 미뢰가 받아들인다. 이를 통해 미세포가 자극을 받으면 그 자극이 뇌로 이어져 맛을 느끼게 된다. 단맛·쓴맛·신맛·짠맛·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침 분비량 적거나 스트레스도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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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과 같이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단맛을 잘 느낄수록 비만을 막을 수 있다.

미각은 건강과 직결된다. 미각을 잘 느낄수록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먹을 수 없거나 몸에 위험한 음식을 곧바로 뱉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약수아이누리한의원 김민주 대표원장은 "쓴맛·신맛은 독성·부패의 경고이므로 우리 몸이 본능적으로 섭취하기를 꺼린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미각은 특정 맛을 적당량 섭취하도록 조절해 준다. 단맛·짠맛을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다면 당뇨병·고혈압·비만을 막을 수 있다.

매운 맛은 미각기능에 악영향을 미친다. 차움 이윤경(가정의학과) 교수는 "매운맛을 인식하는 세포는 맛을 느끼는 게 아니라 통증을 느끼는 '통각(痛覺) 세포'다. 매운맛의 음식을 계속 섭취해 혀에 통증을 주면 미각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침 분비량이 적거나 체내 아연이 부족해도 미각이 둔화될 수 있다. 계절성 우울증같이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여도 입맛을 떨어뜨린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각기능이 떨어지면 건강에도 좋지 않다. 단맛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설탕을 지나치게 섭취하게 되고, 지속되면 인슐린 저항성을 높여 당뇨병 발병 위험을 높인다.

대체로 살찐 사람은 단맛에 둔감하다. 2010년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영양학과 연구에 따르면 당분이 첨가된 음료수를 하루 한두 잔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26%, 대사증후군에 걸릴 위험이 20% 각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짠맛에 둔감하면 나트륨을 많이 섭취하게 된다. 이는 고혈압·동맥경화·울혈성 심부전 같은 심혈관계 질환의 원인이 된다. 이 같은 질환은 미각을 떨어뜨리거나 잃게 한다. 갑상선기능저하증 같은 내분비 장애, 노화, 악성 종양, 영양실조 등이 있으면 맛에 민감하지 못하다.

미각장애 환자 70%가 후각 장애

미각은 후각과 깊이 관련돼 있다. 가천대 길병원 정주현(이비인후과) 교수는 "미각이 떨어져 내원하는 환자 10명 중 7명꼴로 후각기능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9년 대구가톨릭대 이비인후과학교실이 미각장애 증상으로 이 병원을 찾은 환자 60명을 조사한 결과, 후각장애가 미각장애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으로 밝혀졌다. 만성질환으로 약을 오래 복용했거나 축농증, 바이러스 감염, 교통사고로 인한 두부 외상 등으로 후각기능이 저하되면 미각기능도 덩달아 나빠진다.

노화도 미각기능이 떨어지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미각세포도 늙는다. 특히 맛 중에서도 단맛·신맛보다 쓴맛·짠맛의 미각이 더 빨리 퇴화된다. 나이들수록 반찬이 짜지고 쓴 약도 잘 먹을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더라도 방심은 금물이다. 짜고 맵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면 미각이 둔화될 수 있다. 인스턴트식품이나 정제된 탄수화물,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 식습관은 미각을 둔화시킨다. 강동경희대병원 김민희(한방안이비인후피부과) 교수는 "맛있는 음식을 갈망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라며 "자극적인 맛보다는 약간의 짭짤함과 달달함만으로도 음식에서 얻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건강에 좋다"고 설명했다.

글=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사진=서보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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