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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위한 ‘웰빙 명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5호 22면

일러스트 강일구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는 추석 연휴가 다가오고 있다. 항상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미디어를 장식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명절증후군’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이 함께 모이면 이론적으로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모이는 사람 중에 그 누구도 마음이 편한 사람이 없어 보이는 것은 왜일까.


대이동에 따른 엄청난 교통정체도 한몫 할 것이다. 많은 가족들이 모이려면 우선 이동을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엄청난 교통정체를 뚫고 가야 하니 장시간 여행은 차를 타는 사람이나 운전하는 사람 모두를 도착하기도 전에 지치게 한다. 집에 돌아갈 때는 다시 그 과정을 겪어야 하니 답답한 마음도 들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이면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따뜻한 말이 오가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기쁘게 할 수도 있지만,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채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가슴 아픈 기억을 남기는 명절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봐야 한다.


명절증후군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엄청난 양의 집안일이다. 연휴시작 전부터 시작되는 많은 양의 가사노동은 주부들이 명절이란 단어만 들어도 지레 겁을 내게 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명절이 지나고 나서 대상포진이 걸려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있는걸 보면 신체적 체력 소모가 만만치 않다. 허리를 구부린 채 앉아서 일을 하지 말 것, 무거운 물건을 들 때는 앉아서 들고 일어날 것, 전을 부치거나 요리를 할 때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지 말고 식탁과 같은 곳에 놓고 앉아서 할 것, 설거지를 하면서 한 발을 올려두는 것을 번갈아가며 반복할 것 등 근육이나 관절의 통증을 줄이기 위한 훌륭한 조언들이 라디오와 신문, TV에서 연이어 나온다, 하지만 일정 시간 내에 많은 일을 해치워야 하는 당사자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다. 요즘은 명절 기간 내내 힘들어하는 아내 눈치 보느라 맘이 편치 않은 남편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유학을 다녀 온 후배가 유학 초기에 다른 집에 초대받아 놀러 갔다가 겪었던 에피소드를 얘기해줬다. 다들 가져온 음식을 식탁에 꺼내놓거나 식사준비를 돕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움직이지 않고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자신의 남편과 한국에서 갓 유학 온 남편들이었다고 한다. 명절 준비를 하느라 여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 남자들보다는 ‘내가 도와줄께’ 하는 남편이 멋지고 고맙다. 하지만 업무분장의 시작은 ‘네가 할 일 내가 도와준다’가 아니라 ‘원래 우리가 함께 할 일을 나눠서 한다’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 모두 명절을 즐길 권리가 있다. 원래는 안 해도 되는 일인데 도와준다는 생각이 아니라 원래 함께 해야 하는 일을 서로 나눠서 한다고 생각하는데서 업무분장이 시작되면 명절증후군이 조금은 덜해질 것 같다.


올해만큼은, 명절 내내 먹은 술과 기름진 음식들로 인해 혈당이나 콜레스테롤 조절이 안 된다고 투덜거리는 남자와 명절 지나고 온 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며 쓰러지다시피 진료실 책상에 엎드려 우는 여자가 한 지붕 아래에 사는 한 가족임에 씁쓸해지고 싶지 않다. 웰빙명절은 우리 함께 가야하는 거니까.


박경희한림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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