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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마누엘 칼럼

성형수술과 유교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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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요즘 강남구 신사동이나 압구정동의 지하철역에 외동딸을 데려가기가 민망할 정도다. 아직 어리고 감수성 강한 딸과 함께 걷다 보면 자연히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성형외과 광고 때문이다. 광고판마다 성적 메시지가 농축된 여성들의 포즈로 즐비하다. 여성이 성공하려면 육체적으로 아름다워야 하고, 그렇게 보이기 위해선 외모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어릴 적부터 여성의 정신세계를 황폐화시킨다. 실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누가 봐도 한국은 갈수록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나라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서부터 중간관리직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눈부신 활약을 보라. 더구나 여성 대통령까지 나온 나라가 한국 아닌가.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런 여성들이 지식이 풍부하고 능동적인 사회구성원이 되기보다 외모지상주의의 굴레에 갇혀 있다면 한국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는 엄청날 것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같은 외모지상주의는 가위 위험수준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년 전만 해도 여성의 외모에 유별난 관심을 갖는 나라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역전됐다. 일본 여성보다 훨씬 더 많은 한국 여성이 외모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심지어 성형수술이 중국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효자산업’이란 말도 심심찮게 나도는 판이다.

 이제 이런 추세에 단호히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 문화적 퇴폐주의를 연상케 하는 이 위험한 관행을 끝낼 때가 됐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불요불급한 성형수술을 부추기는 광고를 금지하고, 이를 재건수술 용도로 국한시키는 조치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이 문제는 무엇보다도 젊은 여성들의 사고방식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야만 해결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한국의 전통적인 선비정신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알다시피 한국은 과거부터 물질주의와 외모에 대한 쓸데없는 집착을 배격하는 심오한 정신세계를 구축했다고 자부하던 나라다. 이런 지적에 혹자는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을 하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두루마기와 저고리를 걸친 남성들의 전유물인 케케묵은 유교사상이 현대 여성과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말이다.

 십중팔구 한국 여성들은 도덕을 지고의 가치로 여긴 선비정신 하면 여성 억압과 편협한 사고의 어두운 유산을 떠올릴 것이다. 과거 한국 여성들이 전통사회에서 끔찍한 차별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비전이나 다산 정약용 선생의 뛰어난 통찰력이 앞으로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여성들에게서 잊혀진다면 이 또한 엄청난 손실이 아닐까.

 상상력과 창의성만 발휘하면 진정한 ‘혁명’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한국의 유교전통에 깃든 심오한 윤리적 통찰력을 여성차별의 유산과 확연히 구분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여성들이 기꺼이 한국 유학자들을 자신들의 윤리적 모델이자 영웅으로 받아들이는 혁명적 사고변화가 일어난다면 말이다. 한국에선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특히 한국 여성들은 더욱 그러하다.

 유교전통의 재해석과 함께 선비정신을 현대 여성들에게 직접 적용 가능하도록 재정의하는 일은 한국사회의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서도 긴요하다. 이 일은 미국과 프랑스에서 일어난 민주주의의 부흥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에선 오직 상위 계층의 남성들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이 개념이 18세기엔 모든 백인 남성들에게, 19세기엔 모든 남성에게, 그리고 20세기 들어 모든 시민들에게 확대됐다. ‘민주주의’라는 유구한 개념에 내포된 엄청난 잠재성을 후세에 계속 살려나가려 노력한 덕분에 여성참여가 새로운 정치질서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무시해온 놀라운 유교전통도 충분히 그런 방향으로 발전이 가능하다.

 이런 변혁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학자, 정책결정자, 시민들 간에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대화가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유교로부터 도덕적인 행동과 바람직한 삶에 대한 통찰력 중 가장 훌륭한 면면들을 끄집어내 여성들로 하여금 이어받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 여성들이 보편적인 선(善)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겸손한 유학자와 물질적 유혹에 맞서 지고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낸 유학자들을 바로 자신들의 ‘선배’로 여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뚜렷한 가치관과 도덕성을 겸비한 여성 유학자, 지식인, 공무원, 정치인들이 앞으로 건전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간다면 한국사회가 자신감을 갖고 보다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여성이 성공하려면 외모가 돋보여야 한다는 그릇된 믿음과 사회의 이목을 끌려면 돈을 들여서라도 외모를 바꿔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떨쳐버리고서 말이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