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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안드로이드 새 OS 이름은 ‘마시멜로’… 융합의 시대, 문·이과 구분 없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눈이 녹으면…’이라고 말을 꺼내면 문과생은 ‘봄이 온다’ 하고, 이과생은 ‘물이 된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문과생과 이과생의 관점 차이를 설명하면서 인터넷에서 회자되던 글인데 다른 예들도 재미있다.

 정의를 말하면 문과생은 Justice(正義)를 생각하고, 이과생은 Definition(定義)을 생각한단다. 염소라는 단어에 대한 문과생의 반응은 ‘음메!’를 떠올리지만 이과생은 Cl이라는 화학기호를 생각해 낸다. 심지어 Life라는 단어에 문과생은 삶을 생각하지만, 이과생은 철화리튬이라는 물질을 생각한다고 한다.

 이런 유머에는 문과생이 이과생을 낭만도 꿈도 없는 단순하고 싱거운 사람들로 보는 경향이 다소 있지만, 그 반대의 시각도 있다. 멋진 아이디어와 개념을 설명해 놓고는 “자세한 것은 기술이 다 알아서 해줘~” 한다며 무책임한 문과생을 놀리는 식이다.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던 사고는 30년 전에는 말이 통했을지 모른다. 당시에는 문과와 이과가 한데 모일 일이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 야구카페에서도 만나고 자동차 카페,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에서도 만난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관점을 갖고 이야기하게 되고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각, 용어의 차이를 보여주는 현상이 됐다.

 Default라는 단어는 경제 분야에서는 국가부도를 뜻하는 말이지만, IT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십중팔구 ‘기본값’을 의미한다. CD는 양도성 예금증서가 아니라 콤팩트 디스크(Compact Disk), CP는 기업어음이 아니라 콘텐트 제공자(Content Provider) 등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린다. 루비라는 말은 일반인에게는 아름다운 보석이지만 개발자에게는 프로그램 언어로 통한다. 마시멜로는 디저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용어의 차이를 두루 꿰뚫는 건 문방사우라고 해서 ‘종이, 붓, 먹, 벼루’만 알던 선비들에게 어느 날 컴퓨터와 키보드를 갖다 주고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실행시켜 글을 쓰라고 하는 격이다. 반대로 프로그램과 하드웨어를 만드는 장인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동호회에 가입했으니 ‘인사말을 써 보라’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회원들이 관심 끌게 재미있게 풀어놓으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그중에는 늘 재주꾼들이 있게 마련이어서 둘 다 능숙히 해내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남들이 쉽게 하는 일을 이쪽에서는 머리를 쥐어 싸매게 된다.

 하지만 한두 가지만 알아서는 살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통섭을 이야기하고 융합을 말한다. 과거의 잡학다식은 좋은 물에는 육각수가 있고, 냉면에는 함흥식과 평양식이 있다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그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다. 파이선(Python·프로그램 언어 종류)과 빅데이터, 최신 카카오톡의 샵(#)검색기능, 꿀벌의 진드기에 대응한 진화, 일본의 카베동(마음에 드는 이성을 벽에 밀어붙여 세우는 것. 일명 벽치기) 유행까지 온갖 복잡다단한 것을 다 알아야 한다.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쓸 수 있어야 하는 시대다.

 물론 이렇게 뒤섞이고 있는 현상을 몰라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1만 년 전 신석기시대 때부터 먹기 시작한 밥맛이 하루이틀 사이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아직도 명함에 e메일 대신 팩스번호를 넣는 사람이 많다. 1950년대 등장해 우리나라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B-52 폭격기는 첨단무기가 즐비한 이 시대에 아직도 가장 두려운 전략무기다. 세상일이 늘 최신 트렌드만 갖고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최신이라고 해봐야 현실화되지 않거나 표피적인 내용들이 남발되고 있는 것에 거부감도 좀 있다.

 과거와 미래, 문과와 이과, 자연과학과 인문학,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뒤섞이면서 뿜어져 나오는 이 거대한 창발적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경험해 보자. 잡학다식의 수준을 넘어 시대를 바꾸는 비전과 통찰을 얻을 수도 있다. 이 짬뽕의 시대, 어쩌면 인류의 가장 놀라운 변화를 금세기 우리 삶에서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임문영 온라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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