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진국 칼럼

박근혜의 선거, 김무성의 선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대기자

총선을 앞둔 정기국회는 허당이다. 마음이 모두 표밭에 가 있기 때문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의정활동을 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밤새워 준비한다고 지역구민이 금방 알아주기를 하나. 잘 꾸민 의정보고서 한 장 뿌리느니만 못하다. 당장 급한 게 공천이고, 지역구 행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 총재 시절 의정활동으로 의원들의 성적을 매겼다. 출석을 체크하고, 질의서 내용과 반응 등을 따져 공천 자료로 활용했다. 쉽게 말해 내신성적 같은 것이다. 신문의 1면 톱을 놓고 김영삼 전 대통령 측과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의정 활동은 당 전체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3김씨가 사라지면서 정당이 민주화됐다. 하지만 한편으론 ‘주인 없는 정당’ 꼴이다. 의정 활동을 챙기는 사람이 없다. 지도부까지 공천 다툼에 뛰어들어 뒤숭숭하다. 여(與)나 야(野)나 꼭 같다. 파벌이 많은 새정치민주연합이야 그렇다 치자. 정기국회에서 노동개혁 법안들을 처리해야 하는 집권당마저 잡음이 새나온다.

 내년 4월 총선은 박근혜의 선거일까, 김무성의 선거일까. 내년 2월 말이면 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3년. 그 두 달 뒤에 치러지는 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중간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는 박근혜의 선거다. 대통령은 선거에 개입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정부와 독립된 조직이다. 당에 대해 투표하고, 다음 대선을 준비할 고비다. 그런 점은 김무성의 선거라 할 만하다.

 박근혜의 선거이면서 김무성의 선거. 대통령을 평가하지만 대통령은 개입해선 안 된다.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이 선거를 부정으로 얼룩지게 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방송기자클럽 회견에서 “우리 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탄핵 소추를 당했다. 대통령에게는 그 정도도 허용하지 않는 게 국민정서다.

 물론 과거와 비할 바는 아니다. 이승만 정부는 선거 부정으로 넘어졌다. 박정희 정부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필자도 초등학생 시절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연필과 책받침을 받았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당시 현직 청와대 비서관의 이름과 사진이 새겨진 것이다.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할머니께 투표 용지 맨 앞칸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조르기도 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엔 중대장 앞에서 공개투표도 경험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대통령의 개입은 새누리당에서부터 논란이다. 우선 공천권이다. 김무성 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로 하자고 한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청와대의 입김을 막겠다는 의도다. 이명박 정부 때의 ‘공천 학살’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한다. ‘현직 대통령이 공천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새정치연합이 거부했다. 여론조사 방식을 ‘플랜B’라고 하지만 ‘친박’ 측은 여기에도 콧방귀를 뀐다. 새정치연합은 현역 의원 20%를 배제해 전략공천하고, 정치신인에게는 공천심사에서 10%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대대적인 물갈이가 불을 보듯 하다. 민심을 고려하면 새누리당도 현역 의원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방식만 내세우기 어려운 처지다.

 급기야 대통령 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은 ‘김무성 대선후보 불가론’까지 꺼냈다. 곧바로 부인했지만 속마음은 드러낸 셈이다. 말만이 아니다. 친박 측은 차근차근 이런 행보를 해 왔다. 김 대표를 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묶어 생각하면 구슬을 꿰듯 일관성이 보인다. 이러다 정말 ‘박근혜만의 선거’가 되는 건 아닌가.

 박 대통령은 이미 한 차례 시비에 걸렸다.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를 겨냥한 듯한 ‘배신의 정치’ 발언 때문이다. 지난 7일에는 대구를 방문하면서 국회의원을 한 명도 부르지 않았다. 출마 가능성이 있는 청와대 참모만 4명 데려갔다. 이틀 뒤 인천 방문 때 여야 의원들을 불러 비교되게 만든 것도 상당히 의도적으로 보인다.

 콕 집어 뭐라고 할 순 없으나 대구 방문은 ‘배신의 정치’ 발언보다 훨씬 정치적이다. 내용이나 의도가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총선 승리’ 건배사보다 훨씬 분명하다. 정 장관 건배사야 정당 내부 행사에서 ‘이불 속 만세’ 같은 걸 부른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의도는 유권자의 가슴에 분명히 전달된다.

 20대 총선이 7개월이나 남았다. 박 대통령의 걸음은 얼마나 더 빨라질지 알 수 없다. ‘선거의 여왕’이 가진 감각이 확실한 승리를 담보해줄지 모른다. 그러나 무리한 개입은 유리한 국면에 오히려 역풍을 일으킬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임기 초 국정원 댓글 논란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또다시 그럴 여유는 없다.

김진국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