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건] 김일곤,“왜 죽였느냐” 질문에 “나는 잘못한 것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8일간의 도주극을 벌였던 ‘트렁크 시신사건’ 용의자 김일곤(48)이 시민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처음에는 핸드폰과 차량만 빼앗을 생각이었지만 욱하는 마음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오늘 오전 11시 5분쯤 성동구 성수동의 한 동물병원에서 안락사 약을 달라며 칼을 들고 위협한 김씨를 병원측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체포했다.

김씨는 병원 간호사가 진료실 뒷문으로 도망쳐 문을 잠그고 112에 신고하자 도주했다. 급하게 병원을 빠져나간 김씨는 병원에서 1km떨어진 지점에서 경찰과 맞닥뜨렸다. 경찰은 김씨의 인상착의를 확인한 후 신분증을 요구했으며, 김씨는 지갑을 내어주며 검문에 응했다. 하지만 신분증에서 김일곤이라는 이름을 확인한 경찰이 김씨를 체포하려하자 허리춤에서 30cm길이의 회칼을 빼들고 격렬히 저항했다. 하지만 5분만에 경찰관 두명에게 제압을 당했다.

경찰 진술에서 김씨는 “처음에는 살해할 의도가 전혀 없이 차량과 휴대폰만 빼앗을 생각이었지만 여자가 도주를 하는 바람에 죽이게됐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9일 충남 천안의 한 대형마트에서 짐을 싣고 차량에 탑승하는 A(35ㆍ여)씨를 밀쳐 목을 누른 후 기절시켰다. 이후 깨어난 A씨가 용변이 급하다고 해 잠시 내려줬으나 도망치자 이를 쫓아 다시 차 안으로 끌어들인 뒤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한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여성혐오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경찰은 이것을 김씨가 피해자를 살해한 한 배경으로 보고있다.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과거 식자재 배달 일을 했는데 여성 주인들이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며“약속을 지키지 않는 여자를 그때부터 증오하게 됐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과 22범인 김씨가 과거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전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피해자를 살해한 후 시체를 트렁크에 싣고 국도를 이용해 부산과 울산 등지를 돌아다녔다. 경찰진술에서 김씨는“피해자의 주민등록증을 보니 주소지가 김해로 적혀있어서 시신을 그 근처에 묻어주려고 부산과 울산으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잠은 대부분 차에서 해결했다. 이후 11일 새벽 4시경 서울로 올라와 과거 본인이 1년 반가량 거주했던 성동구의 한 빌라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불을 지른 후 도주했다.

이에 경찰은 서울청 광역수사대 2개팀 10명과 CCTV분석 전문가 8명 등이 포함된 57명의 특별수사전담팀을 꾸려 김씨를 추적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의 프로파일링을 분석한 결과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라며 "의탁할 곳이 없기 때문에 서울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며 수사를 진행해왔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김씨는 교도소에서 복역한 18년동안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았고, 가족과의 연락도 수 년째 끊기는 등 타인과의 교류 관계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한편 이날 오후 12시 30분 경찰서에 도착한 김씨는 얼굴을 전혀 가리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왜 죽였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나는 잘못한거 없다”며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회색셔츠에 청록색바지를 입고 있었고, 머리는 몹시 헝클어져 있었다. 눈 밑에는 진한 다크서클이 자리잡고 있었다.
경찰은 김씨를 직접 검거한 김성규 경위와 주재진 경사에 대한 1계급 특진을 오는 18일 진행할 예정이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박병헌 기자 park.bh@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 영상 시민 제공]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