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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칼럼] 면역항암제의 혁신으로 완성한 삼위일체가 만들어 내는 기적을 기대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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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경북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이수정 교수

만약 당신이나 당신의 사랑하는 가족이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는다면? 대부분은 진단을 쉽게 믿지 않고 다른 병원을 찾아 다니며 ‘왜 하필 나인가?’라며 분노한다. ‘조금만 더 살 수 있었으면’하는 타협과 우울상태를 거쳐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용 단계에 이른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다섯 단계는 일반적으로 암 환자가 겪게 되는 심리 변화다.

암은 개인은 물론 한 가정, 사회에 큰 부담을 지운다. 경제적, 심리적, 육체적으로 겪는 고통은 두 말할 나위 없다. 다행히 적극적인 수용 상태에 이르러 치료에 임한다 하더라도 어려움은 끝나지 않는다. 수술, 항암치료, 계속된 검사와 초조하게 흐르는 시간. 웬만한 의지를 갖지 않고서야 의연히 암을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암을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다. 그렇지만 암 선고가 곧 사형선고는 아니다. 암 치료 기술의 발달은 암을 불치병이 아니라 난치병으로 바꿔 놓았다.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암도 잘 관리하면 문제가 없는 만성질환으로 변화되고 있다. 암 조기 검진으로 5~10년 생존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발전을 거듭한 수술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항암치료법 역시 해를 거듭할수록 진화하고 있다. 1세대 항암제라 불리는 세포독성항암제는 암 세포를 없애거나 줄이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이지만 정상세포도 함께 공격하기 때문에 탈모, 구토 와 같은 이상 반응으로 인해 환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회사나 사회 생활을 하기에는 어려운 점을 가지고 있다.

뒤를 이어 혜성처럼 나타난 2세대 표적항암제는 특정한 표적 인자를 가진 암세포만 골라서 공격하는 기술로 환자의 생명 연장은 물론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해 삶의 질을 높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표적항암제 역시 적용되는 암 종의 범위가 협소하다는 점과 비교적 짧은 치료 기간 안에 내성이 발현하는 점으로 인해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1, 2세대 항암제가 드러낸 한계로 항암치료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할 무렵, 3세대 면역항암제의 등장은 고무적일 수밖에 없다. 면역항암제는 간단히 말해 인체 내의 면역시스템을 활용하는 신개념의 치료법이다. 일부 암의 경우에는 암세포가 인체에 자리를 잡으면서 암세포로 인지되지 못하게 하는 단백질을 분비해 마지 정상세포인 것처럼 속임으로써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한다. 즉 인체 내 면역시스템을 무용지물이 되게 하는 셈이다. PD-1 억제제로 대표되는 면역항암제는 암세포가 더 이상 이러한 위장 단백질을 나타내지 못 하게 하여, 면역세포가 효과적으로 암세포를 인식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한다. 최근 발표 된 연구에 따르면 악성흑색종, 폐암, 위암, 두경부암, 방광암 등 다수의 암들이 면역항암제의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면역 항암제가 최근 국내에서도 악성 흑색종의 치료제로 시판되어 (키트루다, 옵디보 외) 이제 국내의 환자들도 면역 항암제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악성 흑색종은 국내에서 최근 5년 간 33% 이상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피부암으로 치료제가 많지 않고 제한적이며, 치료의 예후 또한 좋지 않다. 이런 악성 흑색종의 치료에 면역 항암제와 같이 치료효과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치료제의 등장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존재만으로도 인간의 몸과 마음을 나약하게 만드는 암이지만, 암세포의 공격이 집요해지는 만큼 암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결과 또한 눈부시다. 얼마 전 TV를 통해, 30년 전 1%의 가능성을 희망으로 삼아 암을 치료해 30년 넘도록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한 암 환자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더 이상 뉴스가 아닌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 되길 바란다. 생존에 대한 희망, 의료진에 대한 신뢰. 여기에 혁신적인 치료 기술이 삼위일체가 된다면 기적과 같은 이야기는 바로 모든 암 환자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 본 칼럼은 외부필진에 의해 작성된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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