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외로움이 미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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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명인(1946~) '외로움이 미끼' 전문

보이지 않는 바닥까지 낚싯줄이 닿아서
그와 줄 하나로 이어졌으나
등 푸른 고등어가 팽팽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줄 끝의 내가 아니라
세 칸 낚싯대의 탄력으로 버팅기는
등 뒤의 산맥이었으리
깊이를 몰라 뒤채는 물보라 허옇게
부서져 나가자
심해의 밑자릴 넘겨주시려는지
퍼덕거림의 뿌리가 가슴속까지 덜컹,
수심으로 전해진다
그토록 박차고 싶었던 외로움의 해구를 지나와야
비로소 감지되는 바다 검푸른 촉수가
내 몸에서 돋아난다



물고기들은 왜 뻔한 미끼를 무는 것일까? 지능 부족? 물론 그렇겠지. 그러나, 이 등푸른 고등어를 보라! 미끼를 물고 퍼덕거리는 이 친구는 낚싯대를, 낚시꾼을, 낚시꾼의 배경까지도 너무 '팽팽하게' 끌어당긴다. 숙명 같은 고독을 견디기 어려웠으나, 다만 계기가 없었던 것. 바로 그 자체가 미끼임을, 진정한 낚시꾼은 안다. 그 자신이 외로움의 극에 달해, 날마다 줄을 물에 드리우는 사람이니까.

박덕규<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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