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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對日 미래지향' 함정은 어디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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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우리나라 영화 '집으로'가 지난달부터 일본 20여개 도시에서 상영되고 있다. 도쿄(東京) 중심부에서 시작됐다가 전국 주요 도시로 확대 개봉됐다. 문맹인 시골 할머니에 얽힌 사연이 일본 영화팬들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부터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상영된 일본 영화는 한국인들에게 어떤 서정을 안겨주었을까. 영화 개방이 아직 제한적이긴 하나 우리 팬들의 감성을 자극한 작품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일본 영화의 수준이 낮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두 나라 국민 사이의 이성과 감성은 한편의 영화나 연극 또는 음악을 통해 엇비슷한 반응을 나타낼 것이라고 추정하기 쉽다. 그러나 속단하지 말 일이다.

현재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되고 있는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의 영화 '나생문(羅生門)'의 무대 버전과 19세기 말 일본의 서민생활을 그린 연극 '달님은 예쁘기도 하셔라'에서 우리나라 배우들이 주요 배역을 맡았다.

이 연극도 우리나라 관객의 감동을 사기 위해서는 배우들이 몸으로 발산하는 열정 못지않게 일본인의 정서를 받아들일 마음의 통로를 열어줘야 할 것이다.

일본은 과거 한국 침략행위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1998년 한.일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선언에서 사용된 '오와비(おわび)'라는 일본말은 '사과'라는 의미에 가깝다.

당시 일본 측은 '사죄(謝罪)'라는 한자어 사용을 거절하고 대신 '오와비'를 고집했다. 한국 측이 이를 '사죄'로 번역해 쓰는 데 동의했을 뿐이다.

88년과 98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본토에 있는 일본계 미국인 및 중남미계 일본인들을 강제 이주시킨 데 대한 미국 측의 사죄를 결코 '오와비'로 표현하지 않았다.

한자어 '사죄'를 썼다. 일본 지도자들은 한국에 대해 사죄의 '죄(罪)'에 대한 역사적.정치적 해석을 두려워했으나 미국에 대해서는 그걸 요구했다.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한 시정조치와 관련해서도 일본은 공식적으로 '적극적'인 검토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단지 일본어인 '전향적(前向き)'이라는 단어를 내놓는다. 이 말은 문제를 정면에 내놓고 보겠다는 뜻이므로 '적극적'이라는 외교 용어보다 가볍게 느껴진다.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과 일본의 파트너들이 즐겨 쓰는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구축에는 사용하는 언어와 의식의 밑바닥에 흐르는 정서에 많은 간극이 들여다보인다.

일본은 미래지향적이라는 말을 두고 과거는 물에 흘려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고, 한국은 과거를 용서하되 잊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어떻게 해야 두 나라 지도자들의 마음의 통로가 열릴까.

97년 세상을 떠난 가네야마 마사히데 전 주한 일본대사(1968~72년 근무)가 그의 유골을 한.일 양국에 나눠 묻어달라고 유언하면서 진실로 한.일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염원했을 때 우리는 감동했다.

또 다른 지한파인 스노베 료조 전 주한대사(1977~81년 근무)는 "새싹이 나와야 낡은 잎사귀가 떨어진다"는 고사를 인용하면서 두 나라의 미래구상을 실천에 옮길 차세대의 출현을 목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잊지 못한다.

양국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함정이 어디에 있는지 그들이 너무 잘 알고 있다. 마음을 열지 않는 게 함정이다.

최철주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