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간암 말기 환자 이름 개명 시켜 땅주인 행세…토지 대출사기단 검거

중앙일보

입력

간암 말기 환자를 땅 주인과 같은 이름으로 개명시킨 뒤 해당 땅을 담보로 수십억원대 대출사기를 벌이려 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가짜 땅 주인과 조작한 서류를 이용해 토지 담보 대출사기를 벌이려 한 혐의(사기 미수)로 황모(55)씨 등 2명을 구속하고 범행에 가담한 박모(60)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황씨 등은 조직을 총괄하는 ‘총책’, 토지를 물색하는 ‘땅꾼’, 주민등록초본 등 서류를 위조하는 ‘공장’, 서류 및 자금을 전달하는 ‘바람막이’ 등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점 조직 형태의 토지사기 조직이었다.

이들은 먼저 등기부등본에 땅 주인의 이름과 주소만 기재돼 있고 생년월일은 기재돼 있지 않은 땅을 물색했다. 그리고 땅 주인과 성이 같은 간암 말기 환자 박씨를 섭외해 이름을 개명하게 하고 가짜 땅 주인 행세를 하게 했다. 박씨가 사망한 후 범행이 들통나면 책임을 모두 박씨에게 떠넘기기 위해 말기암 환자를 범행에 끌어들인 것이다.

이들은 1984년 7월 1일 이전까지는 부동산 등기 신청 시 주민등록번호 입력이 의무화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생년월일이 기재돼 있지 않은 땅을 찾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먼저 범행 대상이 된 곳은 경기도 화성의 15만㎡ 규모의 토지였다. 이들은 공시지가 100억원에 달하는 이 땅을 사기에 이용하기 위해 실제 땅 주인의 성과 같은 성을 가진 박씨를 섭외하고, 억대 사례금을 약속하고 이름을 땅 주인과 똑같이 개명하게 했다.

이후 박씨의 주민등록초본을 위조하는 등 관련 서류까지 갖춘 조직은 제2금융권을 찾아가 땅을 담보로 40억원을 대출하려 했다. 그러나 당일에 발급한 서류를 갖추지 않아 범행에 실패했고, 다시 경기도 안양에서도 같은 방식의 범행을 벌이려 했지만 첩보를 입수하고 잠복 중이던 경찰에 붙잡혀 미수에 그쳤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가짜 땅 주인인 일명 ‘바지’를 섭외해 이름까지 개명시키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고, 말기암 환자에게 범행을 떠넘기려고도 했다”며 “최근 같은 수법의 범행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이번 사건과의 관련성을 파악하고 공범을 찾기 위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