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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대화 막판으로 치달아…10일 타결 희박해 보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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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화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진 안개 속이다. 정부가 정한 협상시한인 10일 타결될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그렇다고 결렬을 점치기는 이르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협상이 진행될까. 그 간의 긴박한 노사정 협상 진행과정을 다시 한 번 꼽씹는 이유다.

8일 오후 9시 노사정 대표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모였다. 노사정 대표는 김동만 한국노총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다. 지난달 27일 대화를 재개한 뒤 두 번째 모임이다. 이날 대표자 모임은 계획에 없었다. 노사정 간에 쟁점으로 부각된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와 저성과자 해고와 관련된 토론회가 끝나고 나서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두 가지 쟁점은 정부가 이슈화했다. 정부는 행정지침을 만들어 두 사안을 추진하려 했다. 임금피크제를 확산시키기 위해 회사 내 기본적인 규율을 명시한 취업규칙을 노조의 동의가 없어도 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하려 했다. 저성과자 문제는 노사간 해고를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니 대법원 판례를 기초로 지침을 만들자는 얘기다.

그런데 이날 토론회 내용은 정부 방침과 영 딴판이었다. 법학자를 비롯한 토론회 참석자 대부분이 "정부 지침으로 만들면 통상임금과 같은 혼란이 초래된다. 중장기적으로 연구하고 여론을 수렴해 법제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침은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정부지침에 따라 임금피크제나 저성과자 해고문제를 다루면 법원에서 패소할 것이 뻔하고, 그 부담은 통상임금 문제처럼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얘기다. 지침을 만들어 적용하겠다는 토론자는 정부 뿐이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김대환 위원장이 회의를 소집했다. 여론이 '지침보다는 법제화'라는 사실을 확인한 이상 정부가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회의장 분위기는 싸늘했다. 정부는 지침으로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은 "노동개혁 협상에 두 사안을 올릴 수 없다"고 맞섰다. 지켜보던 박병원 경총회장은 "그게 협상하는 태도요?"라며 쏘아붙였다. 정부와 노총 둘 다 문제라는 얘기다. 그만큼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다. 과열되자 회의 1시간 만에 정회했다. 김동만 위원장은 노총간부들과 따로 휴식을 취하며 대응책을 논의했다. 나머지 대표들은 김대환 위원장 방에서 환담했다.

30분 뒤 노사 대표가 회담장에 들어갔지만 김대환 위원장과 이기권 장관은 10여 분 동안 별도 협의를 했다. 김 위원장이 여론(토론회 내용)을 들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고, 정부가 다른 수정안을 낼 것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나온 합의서가 "쟁점 사항에 대해서는 정부가 제시한 대안을 간사회의를 거쳐 차기 대표자회의에서 논의한다"였다.(※노사정 협상이 진행 중인 점을 감안해 정부가 내놓은 대안을 기사로 공개하지 않는 점에 대해서는 독자의 양해를 구합니다.)

다음날 오후 간사회의가 열렸다. 간사회의는 이병균 한국노총 사무총장, 이동응 경총 전무, 고영선 고용부 차관, 최영기 노사정위 상임위원이 참여한다. 이 자리에서 이 사무총장은 묵비권을 행사했다. 쟁점에 대한 정부의 대안에 "코멘트도 못하겠다"고 했다. 간사회의에서 조율이 전혀 안 된 상태에서 대표자회의가 열렸다. 소득없이 30여 분만에 끝난 건 예견된 결과였다.

이런 상황에서 10일이란 협상 시한이 지켜질 수 있을까. 더욱이 이 시한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다. 4월까지의 대화 때는 시한을 노사정이 합의해서 정했었다. 한국노총이 정부가 정한 시한을 지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할 때도 이기권 장관이 "26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정부 단독으로 개혁을 진행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그러자 한국노총은 일부러 하루 늦춰 27일 복귀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을 넘기면 정부 단독으로 개혁법안을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부가 대화 결렬을 선언하고 단독으로 추진하는 모양새는 어색하다. 더욱이 정부 단독으로 추진한다고 해도 국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야당의원(김영주)이다. 위원 수는 여야가 같지만 실제는 여당 의원이 한 명 적다. 이완구 의원이 환노위원이어서다. 이 의원은 의원직은 유지하고 있지만 국회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정 대타협'이란 무기도 없이 국회로 전장을 옮기는 건 패배를 목전에 두고 벌이는 전투행위와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노사정 대타협을 강력하게 주문한 것도 이같은 상황인식 때문이다.

정부로선 또 다른 부담도 안고 있다. 공공부문 원포인트 협의체를 노사정위원회에 설치키로 노사정 대표가 합의했지만 기재부가 반대했다. 노사정 합의를 정부가 먼저 파기한 셈이다. 결렬되면 그 책임이 정부에 지워질 수 있다. 8일 밤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기재부 직원이 급히 달려와 동향을 파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무마하려 원포인트 협의체를 기재부에 두기로 한 발 물러섰다.

노사정이 8일 대표자회의에서 이를 '양해'했다. '양해'라는 단어에 이번 노사정 대화에 임하는 정부의 곤혹스런 위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정부의 일방통행을 지적하면서 정부가 머리를 숙이고 이해를 얻어냈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어서다. 특히 노동계로선 기재부에 협의체를 두는 게 나쁠 게 없다. 노사정 협의보다는 노정협상으로 끌고가면 훨씬 유리하다. 정부가 공공부문과 관련된 협상의 파트너가 되기 때문이다. 향후 공공부문 문제는 기재부와 협상할 수 있는 물꼬를 튼 셈이다.

경영계도 서두를 이유가 없다. 경총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가면 어차피 대타협으로 얻는 건 없고 부담만 진다"고 말했다.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과 같은 것을 법제화하자고 주장했지만 도루묵이 된 판이다. 정부와 노동계가 한 치의 양보도 없어서다. 대신 비정규직 퇴직금, 청년 채용 비용, 60세 정년 의무화에 따른 인건비부담 등 하나같이 기업이 짊어져야 할 내용으로 개혁안이 짜여지고 있다는 게 경영계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협상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노동시장선진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의 말에서 그 답을 엿볼 수 있다. 이 최고위원은 3일 한국노총과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얘기하며 "15일까지는 (합의안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당론으로 하자면 토론도 거쳐야 하고, 그 이후 환노위도 거치고 국회 일정에 따라 처리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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