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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한민국은 표절공화국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표절(剽竊)

다른 사람의 저작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몰래 따다 쓰는 행위.

유사성(類似性)

서로 비슷한 성질.

레퍼런스(reference)

언급 대상 또는 언급한 것, 참고자료.

국내 대중문화계가 표절로 얼룩지고 있다.

가요계에서 걸핏하면 불거지던 표절 논란이 이제는 영화와 드라마, 패션까지 문화계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졌다. 더 큰 문제는 논란만 뻔한 패턴으로 반복될 뿐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표절 의심을 받는 쪽을 늘상 '유사성' '레퍼런스' 등 비슷한 말로 해명하기 일쑤다. 게다가 의혹을 받는 쪽이 적반하장으로 강경대응하겠다며 들고 일어나는 경우도 다반사. 여기에 요즘은 잘 되는 작품에 괜한 흠집내기로 '표절' 누명을 씌우는 경우까지 있어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란 도무지 쉽지 않다. 어쩌다 대한민국은 '표절공화국'이 된걸까.

▲방송

최근에 벌어진 표절논란만 해도 지면이 모자랄 만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베끼기' 의혹이 번졌다.

배우 윤은혜는 중국 예능프로그램에서 만든 옷 한 벌로 데뷔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가 만든 옷은 49억원에 낙찰되는 등 현지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지만 국내에선 '표절'의혹으로 시끄럽다. 국내 디자이너 윤춘호가 표절을 확신하며 SNS에 서운함을 토로하며 표절 논란은 시작됐다. 윤 디자이너의 주장에 입을 다물고 있던 윤은혜는 이틀만에야 입장을 냈다. 윤은혜 측의 주장은 '표절 의혹을 제기해 마케팅에 이용하지 말라'는 거다. 윤은혜 측은 입장표명이 늦어진데 대해 "정말로 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꼭 입장을 발표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또 조목조목 반박하면 자칫 '공격'으로 비춰질까봐 오히려 걱정했다"며 "윤춘호 디자이너가 속상한 부분이 있었다면 충분히 우리쪽에 연락을 줄 수 있었을 텐데 SNS에 공개적으로 글을 올린 점과 '뻔뻔하다, 힘빠진다'라는 말까지 사용한 점 등이 아쉽고 억울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SBS 드라마 '용팔이'도 표절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올해 주중극 중 최고인 전국시청률 20%를 돌파하며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신형빈 작가의 '도시정벌7'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도시정벌' 7부에서도 드라마 처럼 상속녀가 계속 잠들어 있어야 했던 것, 상속녀의 오빠가 존재하는 점, 남자 주인공이 야쿠자를 상대로 불법 의료 행위를 하는 의사인 점 등이 '용팔이'와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상속녀가 침대에 누워있지 않은 것만 빼곤 비슷하다는 반응.

'용팔이' 제작사 HB엔터테인먼트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용팔이'가 만화 '도시정벌7'을 표절했다는 주장은 전체 그림을 무시한 채 일부 단면을 가지고 같은 내용이라고 주장하는 흠집내기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며 ''용팔이'는 장혁린 작가의 오리지널 작품이다. 지엽적인 부분의 유사성을 전체가 그런 것인냥 지나치게 부정적인 시각으로 몰고 가는 것은 순항 중인 작품을 난도질 하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했다.

▲영화

'1200만' 영화 '암살'역시 표절 논란으로 얼룩졌다. 대중들이 "별 일 아닌 것 같다"며 넘겨 대세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씁쓸한 뒷맛만 남겼다.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를 쓴 최종림 작가가 지난달 12일 '암살' 최동훈 감독과 영화사·배급사 쇼박스 유정훈 대표·제작사 케이퍼필름 안수현 대표를 상대로 100억원 피해보상과 함께 영화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당시 최종림은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에 저격조를 만들어 엄선된 요원들을 조선으로 보내는 구성이 소설 설정과 같다. 여주인공을 내세워 친일파를 암살해 가는 내용도 같다. 여주인공 이름이 안옥윤으로만 바뀌었다. 소설을 토대로 몇 해전 시나리오를 만들어 영화 제작사를 찾아다녔는데 그때 유출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암살' 측은 "김구 선생과 김원봉 선생이 암살 작전을 모의하고 요원들을 조선으로 보낸다는 영화 줄거리는 역사적 사실이며 영화는 여기에 허구를 가미해 재구성했다"고 맞섰다. 결국 법원은 "소설과 영화 사이에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최종림 작가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의 결정이 내려지자 '암살' 제작사인 케이퍼필름이 반격에 나섰다. 지난달 25일 최종림 작가의 소설을 재출간한 출판사 측에 '코리안메모리즈'의 전량 회수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케이퍼필름 측은 전량 회수와 함께 주요 일간지에 사과문을 실으라고 요구했다. 최종림 작가는 표절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정식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책을 회수하라는 요구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가요

로이킴은 데뷔부터 표절로 시끄러웠다. 2013년 어쿠스틱 레인의 곡 '러브이즈 캐논' 우클렐레 버전을 비롯해 고(故)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노르웨이 출신 3인조 그룹 '아하(A-Ha)'의 '테이크 온 미(Take on me)'와도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로이킴은 지난달 22일 김형용의 CCM 곡 '주님의 풍경되어'가 제기한 표절 시비 공방에서 승소하며 일부 의혹을 벗었다.

지난 7월, 음원의 신흥 강자 크러쉬의 곡 '오아시스'가 표절 논란에 휩싸였으나 표절 의혹 노래 당사자인 힙합뮤지션 에릭 벨린저가 직접 "그의 곡은 표절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당시 크러쉬의 '오아시스'의 전체적인 멜로디와 훅(후렴구)이 에릭 벨리전의 곡 '어쿼드'와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있어 표절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오아시스'는 표절 논란에 앞서 크러쉬 특유의 감성이 녹아 음원 차트에서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상위권을 오래도록 지켰다. 인기를 끈 음원이었기에 '오아시스'의 표절 논란은 더욱 화제가 됐다.

MBC '무한도전'으로 대세가 된 밴드 혁오도 인기를 얻음과 동시에 표절 의혹에 맞닥뜨렸다. 이들의 곡 '론리'와 '판다 베어'가 더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의 '1517', 유미 조우마의 '도디'와 비슷하다는 지적이었다. 소속사 하이그라운드는 표절 의혹에 정면 반박했다. 소속사 측은 "'론리'는 지난 3월 더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가 내한했을 때 함께 노래했던 곡이며 '판다베어'는 '도디'보다 발매 시기가 빠르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Mnet '쇼미더머니4'에서도 표절 논란이 있었다. 지코가 작곡한 '거북선'이 퀼리네즈의 곡 '후카'와 비슷하다는 목소리였다. 지코는 직접 자신의 SNS에 ''거북선'의 탑 라인을 구성했던 오리엔탈 소스는 폭스 샘플사에서 나온 샘플 시디의 소리이며 제가 찍어 놓은 트랩비트 바이브에 맞게 커팅하고 피치조절을 해서 좀 다른 방식으로 구현한 것이다'고 일축했다.

▲ 의혹만 있고 실체는 없다

그럼 왜 표절논란은 끊이지 않는걸까. 전문가들은 대중문화계 전반에 표절에 대해 큰 잘못으로 생각하지 않는 불감증이 만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중문화 평론가 이호규는 "언제부터인가 '하늘 아래 100% 새로운 건 없다'라는 공식을 너무 맹신하고 그 말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요즘은 표절을 해도 그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 인지하지 못하는 관행이 만연하다. 새로운건 익숙치 않아 싫고 비슷한 것에서 파생됐지만 조금은 다른 포맷을 선호하는 시청자의 성향도 문제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또 심증은 있으나 물증을 찾기 힘든 '창작'의 성격상 논란은 있지만 끝까지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요즘 나오는 표절 논란이라는 게 결정적인 요인과 증거들을 사실 보이기 쉽지 않다. 판정하기도 애매하다. 표절 논란은 1~2년으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직까지 나오지 않은 사안에 대해 언급하기 어렵다. 확정적으로 판정되기가 어려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표절논란이 불거져도 법적인 처벌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지겹게 반복되는 표절 논란을 끊기 위해선 '저작권 위반'에 대한 인식을 창작자뿐 아니라 문화 수용자들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중문화평론가 강태규는 "저작권 위반이 범법 행위라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는 창작자들에게 양질의 작품을 양산하는 문화적 토양을 제공한다. 대중 역시 표절의 감시자로서 객체가 아닌 문화 주체가 되어야 한다. 표절은 친고죄이기 때문에 원작자가 고소해야 죄가 성립된다. 결국 원작자가 부인하면 표절이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존 콘텐츠와 유사점이 발견돼 표절 의혹이 있었다는 것 자체에 대한 책임은 통감하고 고통을 짊어지려는 노력이 있어야 향후 비슷한 상황의 발생을 막고 대중문화계가 더욱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진석 기자 superjs@joongang.co.kr

온라인 중앙일보 jst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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