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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험한 세상의 다리'를 놓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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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당신이 지치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 당신의 눈에 눈물이 고일 때 나는 그 눈물을 닦아주리. 살기 힘들고 친구가 없을 때 험한 세상의 다리처럼 나를 눕히리.'

외환위기의 그늘이 채 사라지지 않았던 1999년 1월. 난 한 케이블 경제방송의 '벤처투자자를 찾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여러 출연자 앞에서 미국의 인기 팝 듀엣 사이먼과 가펑클이 불렀던 팝송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불렀다.

당시 그 프로그램은 아이디어와 좋은 기술을 갖고 있지만 자금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벤처기업들을 소개해주고 있었던 만큼 벤처사업가들을 격려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난 노래와 동시에 " 저희는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우리 프로그램이 건널 만한 다리라고 생각되면 주저하지 말고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때 내 건너편에 앉아 노래를 듣고 있던 한 벤처기업 사장의 눈가에 이슬 같은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았다. 지금은 내 벗이 된 이판정(李判貞.40) 넷피아(www.netpia.com) 사장이 바로 그다.

이 프로그램이 방송된 뒤 李사장은 3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해 재기할 수 있었고, 방송 당시 연 매출이 1억원에 그쳤던 회사 매출이 지난해 76억원을 기록했다.

나중에 李씨에게 "눈물까지 흘릴 만큼 힘이 들었느냐"고 물었더니 프로그램이 방영될 당시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고 대답했다.

95년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던 李씨는 외환위기의 여파로 사업이 휘청거렸다고 한다. 거래처가 부도가 나고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판매대금을 받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빚이 6억원까지 늘어나 자신의 차량 기름값도 치르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매일 빚쟁이 40여명이 전화해 돈 갚으라고 독촉하는데 직원들을 보기가 너무 민망했습니다. 그래서 회사 밖으로 나가 휴대전화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사정하곤 했어요."

또 98년 봄 그가 결혼할 때 양가 어른들로부터 예단비용을 받았지만 아내와 함께 상대편 집안 어른들께는 이를 숨기기로 하고 그 돈으로 직원들 월급을 줬다고 한다.

특히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첫날밤에 호텔 측이 커플들을 초청해 연 '신혼의 밤' 행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그에겐 행사 참석비용 2만원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내가 李사장과 더욱 친해진 것은 2000년 6월 말 한 시민단체가 북한 결핵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개최한'파리-베를린 자전거 대행진'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의 회사는 이 행사를 후원했고, 우리는 "취지가 좋은 만큼 자전거도 타고 유럽에서 모금운동을 하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우리는 이틀간 한 조를 이뤄 자전거를 타고 무려 3백㎞를 달렸다. 새벽에 출발해 오후 11시에 도착해 겨우 텐트를 치고, 오전 1시에 저녁식사를 했다. 20여년간 자전거를 타지 않았던 나는 밤에 근육이 쑤시고 엉덩이가 아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우리는 또 나흘간 차를 빌려 독일 곳곳을 여행했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1주일간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단둘이서 지낸 경우는 李사장이 처음일 것이다.

독일 태생인 나는 1978년 한국 땅을 찾은 뒤 25년 넘게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여성을 아내로 맞았다. 86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뒤 방송.광고에 출연하면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독일제 순한국인'이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귀화하면서 성(姓)은 내가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에게서 빌렸고, 이름은 한국을 돕겠다는 취지로 한우(韓佑)로 정했다. 2001년에는 한국인들이 '한우(韓牛)'를 잡아먹고 뼈까지 고아 먹는다'는 말을 듣고 등골이 오싹해져 한국 발전에 동참하겠다는 취지에서 다시 이참(李參)으로 바꿨다.

나는 李사장에게서 한국의 미래를 본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고생을 하더라도 곁눈질 하지 않는 李씨의 모습이 한국인들의 공통된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벤처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나는 자주 한국인의 창의성에 감탄하곤 한다.

나는 15년째 진돗개를 키우고 있다. 진돗개의 점잖으면서도 부드러운 성격이 한국인을 닮은 것 같다. 조만간 내가 키우는 진돗개가 새끼를 낳으면 李씨에게 선물할 생각이다.

정리=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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