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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의 무기, 논리와 합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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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형경
소설가

20여 년 저쪽에서 알았던 지인 남성은 취미가 ‘논쟁’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그는 누군가와 어떤 주제로든 토론하기를 즐겼는데 때와 장소, 대상에 구애받지 않았다. 논쟁이나 토론이라고 표현했지만 주로 이야기하는 쪽은 지인 남성이었다. 그의 상대가 된 사람은 예의상 한두 마디 응대하다가 얼떨결에 그의 논리 속으로 휘말려 들고, 이후 남자 특유의 경쟁심을 발동시켜 토론에서 논쟁으로 가는 경계를 넘는 듯했다. 그 시기에는 텔레비전에서도 토론 프로그램을 자주 만났다. 토론자들은 지식·논리·자료 등을 동원해 자기주장으로 상대를 설복시키려 최선을 다했다. 상대방도 자신과 동등하게 옳다고 믿거나 자기주장이 그를 수도 있다고 돌이켜 보는 사람은 드물어 보였다. 토론의 장에 뛰어들 때 남자들은 나르시시즘과 합리화의 갑옷을 입는 듯했다.

 우리가 내면에서 올라오는 불안·공격성·죄의식 등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정신기능 중에 합리화 방어기제가 있다.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는 생각이나 사건에 대해 그것이 오히려 옳고 정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자신에게 설명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합리화 방어기제를 사용할 때는 자기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치밀한 논리를 전개하며, 논리를 뒷받침할 지식도 준비한다. 대체로 지식화 방어기제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지식의 창고도 넉넉히 채워 둔다.

 ‘절규’의 화가 뭉크는 다섯 살에 어머니를 잃었고, 열다섯 살에 각별한 사이였던 누나마저 세상을 떠났다. 분리 불안, 유기 우울증, 관계 맺기 어려움 등 마음의 문제를 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면의 불편한 감정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승화 방어기제를 사용해 심리적으로 살아남았다. 승화와 함께 그가 사용한 대표적 방어기제는 합리화였다. 특히 여성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에서 그랬다.

 “나는 여자를 사랑한 적이 없다. 내게는 산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열정, 가슴을 찢고 피를 말리는 열정은 있지만 ‘여인이여, 내 사랑은 그대뿐, 그대가 내 모든 것이오’라고 말할 만한 상대는 없었다.”

 그의 여자관계는 모호하고 파편적이었다. 뭉크는 그 이유를 은근히 여자의 부족함 탓으로 돌리며 자기 입장을 합리화했다. “여자란 예술 표현의 잠재력을 발현시키는 데 방해가 되는 존재일 뿐이다.” 남자들은 여자의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인 언어를 질색하지만 여자는 남자가 친밀한 관계 안에서 논리와 합리화를 전개할 때 귀를 막는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