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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밀담 나눴던 오진암, 전통 체험장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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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자리한 무계원. 종로세무서 옆에 있던 요정 오진암(사진 아래)을 이전·복원해 주민을 위한 전통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소나무 향기가 짙게 밴 정문을 열고 한발짝 내딛자마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한옥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토가 밟히는 소리다. 안채의 지붕에선 산새들이 와서 지저귄다.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구 부암동에 자리잡은 한옥 ‘무계원(武溪園)’ 풍경이다.

 얼핏 보면 말끔한 새 자재들로 지어진 듯하지만 무계원이 견뎌낸 시간의 켜는 간단치 않다. 안채를 지탱하는 사각기둥에는 100여 년 전 베어진 소나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행랑채를 둘러싼 석축 돌담의 빛바랜 회색은 세월의 두께를 가늠케 한다.

  이 한옥은 1910년 현 종로세무서 옆에 주거용으로 지어졌다. 이곳의 운명은 1953년 한 요정업자에게 팔린 뒤 ‘오진암’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크게 요동쳤다. 한국 현대정치사 거물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요정 정치’의 주무대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1972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박성철 제2부수상이 이곳에서 만나 7·4 공동선언을 논의한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요정은 퇴락했다. 급기야 2009년에는 호텔 사업가에게 팔려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사라질 뻔했던 이곳을 무계원으로 되살린 건 한옥의 건축적 가치와 이곳의 역사성에 주목한 종로구의 제안이었다. “다른 곳으로 옮겨 문화공간으로 복원하겠다”는 간곡한 제안에 호텔 사업가의 마음이 움직였다. 종로구는 2011년 오진암을 부암동 무계정사터에 옮겼고 3년여의 보수공사를 거쳐 지난해 ‘전통문화공간 무계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인적이 끊겼던 이 공간엔 다시 사람의 발길이 찾아오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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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계원은 최근 종로구 ‘한옥 실험’의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보호’에 방점이 찍혔던 한옥 보존 방식을 ‘활용’으로 바꾸는 것이다. 단순히 보존해야 할 과거 유산이라고 보던 시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동시대 주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윤대길 조선건축사사무소장은 “조선시대 궁궐 근처라 상태가 괜찮은 한옥들이 밀집돼 있는 종로는 이 같은 실험을 하는 데 최적의 장소”라고 설명했다.

 한옥 실험은 무계원이 처음은 아니다. 첫 대상은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등재된 혜화동 주민센터다. 이곳은 원래 한국 걸스카우트의 전신인 대한소년단을 창립한 여의사 한소제(1899~ 1997)의 가옥이었다. 박신규 종로구 건축팀장은 “1961년 한소제 선생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종로구가 건물을 샀다”며 “2005년 한소제 가옥을 동 주민센터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실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운문학도서관은 낡아서 버려지는 한옥 자재를 재활용해 보존한 사례다. 공원관리사무소가 있던 자리에 지난해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지어진 도서관은 기와담에 둘러싸여 있다. 1950~60년대 한옥 밀집 지역이던 돈의문 뉴타운 재개발 현장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박 팀장은 “청운문학도서관은 신축 한옥이지만 수십 년간 어느 집 지붕 역할을 한 낡은 기와를 자재로 가져다 쓰면서 보존의 가치를 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고건축물을 현대적 용도로 재활용하는 실험은 해외에서도 활발하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형서점 ‘엘 아테니오’가 대표적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서점’에 오른 이곳은 1919년 오페라 극장으로 문을 열었다. 2000년 건물의 외관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서점으로 재탄생했다. 오영욱 오기사디자인 대표는 “20세기 초의 고풍스러움을 간직한 건축물을 용도를 바꿔 사용한다는 점에서 한옥 실험의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고 말했다.

글=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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