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트 차림에 백팩 멘 배우처럼 ‘신사의 품격’을 누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90년대 말 인기를 끈 미국 TV 시트콤 ‘프렌즈’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연극배우인 조이가 어깨에 가방을 걸쳐 메고 나타나자 친구들이 “어머님, 조이랑 많이 닮으셨어요”라고 놀려 댄다. 조이가 “지갑·열쇠·책 같은 소지품을 넣을 수 있어서 실용적”이라고 하자 친구들은 “왜, 화장품 파우치도 넣지 그러냐”며 낄낄댄다. 에피소드는 여주인공 레이첼이 조이를 위로하는 대사로 마무리된다. “조이, 세상이 아직 너와 네 백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세상 참 빠르게 변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놀림의 대상이던 남자의 가방이 이젠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 가을, 남자라면 갖고 있어야 할 가방을 짚어본다.

브리프 케이스에서 클러치까지

올가을 엠포리오 아르마니(왼쪽)와 캘빈 클라인 컬렉션은 각각 토트백과 클러치를 선보였다.

직장인 안재빈(27)씨는 매일 가방을 바꿔 든다. 그날그날의 옷차림과 용도에 따라 정한다. 노트북PC가 필요한 날은 백팩을 메고 소지품이 간소한 날은 캐주얼한 브리프 케이스(손잡이가 있는 사각형 가방)를 애용한다. 날씨가 무더웠던 올여름엔 클러치백(손잡이가 없는 가방)을 들고 출근했다. 안씨는 “여름이라 옷차림은 가벼운데 가방이 무거워 보이면 썩 어울리지 않아서 클러치를 장만했다”면서 “백팩이나 메신저 백(긴 줄을 어깨에 메는 형태의 가방)은 땀이 차고 옷이 구겨져 여름에는 불편하다”고 말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남자 가방은 ‘007 가방’으로도 불리는 브리프 케이스가 전부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백팩·메신저백·클러치·토트백(윗부분이 트이고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가방) 등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종류가 다양해졌다.

딱딱한 브리프 케이스는 부드러운 가죽이나 천 소재를 사용해 소프트한 사각형 모양으로 진화했다. 캐주얼과 정장에 모두 어울리고, 비즈니스든 소개팅이든 어느 자리에나 들 수 있기 때문에 남성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요즘 남자 가방의 대세는 백팩이다. 평범했던 배낭이 시대 흐름을 타고 패션 아이템으로 변신했다. 수납 공간이 넉넉하고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편리하고, 세련된 디자인이 많아 선택의 폭이 넓다. 가방 전문 브랜드 투미의 이현정 차장은 “노트북·태블릿PC 등 스마트 기기를 휴대하거나 이동 중에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남성들이 백팩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투미 비즈니스 라인에서는 가장 많이 팔리는 종류가 백팩이다. 제냐·프라다·로에베 등 명품 브랜드에서도 맵시 있고 우아한 디자인의 백팩을 내놓고 있다.

클러치는 패션 고수의 아이템이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대중을 파고들고 있다. 쌤소나이트 비즈니스 라인은 2013년부터 국내에서 남성용 클러치를 판매하고 있는데, 그해 선보인 클러치 ‘멜빈’보다 지난해 출시한 ‘라켄’의 월평균 판매량이 3배 가까이 늘었다.

남자의 가방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업체들은 제품 구성을 다변화하고 있다. 헤지스액세서리는 상품 구성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가죽 소재 메신저백의 비중을 30%로 낮췄다. 대신 원단 소재 토트백을 20%에서 40%로 늘렸다. 거의 생산하지 않던 미니백과 빅백의 비중도 확대하고 있다.

남자가 가방을 메는 이유

백팩은 도시 남자의 필수품이다.

여자의 전유물이던 가방은 어떻게 남자의 필수품이 됐을까. 가장 큰 이유로 생활 방식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10여 년 전에는 없던 스마트폰·태블릿PC·전자책 등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되면서 남자의 소지품이 많아졌다. 직장인 김진원(32)씨는 브리프 케이스에 스마트폰과 아이패드, 명함지갑·사원증·담배·라이터·핸드크림·자동차 키 그리고 중국어 교재를 넣고 다닌다. 김씨는 “이것들을 옷 주머니에 넣으려 하면 실루엣이 망가진다”면서 “물건이 많아지면서 필요에 의해 가방을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세대가 영어 잡지를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다녔다면 지금 세대는 나름의 방식으로 각자의 ‘생존 무기’를 가방에 담고 다니는 셈이다.

업무 공간의 변화도 한몫했다.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스마트워크를 권장하는 기업이 많아짐에 따라 가방은 이동식 오피스 역할을 하게 됐다. 패션업체 코오롱FnC는 사무실 내 모든 자리를 ‘자율 좌석’으로 운영한다. 이 회사 이철의 과장은 “앉는 자리가 매일 바뀌다 보니 서류·사무용품 등을 담은 가방이 ‘개인 책상‘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세종시와 서울을 오가는 남성 공무원들에게도 이제 가방은 생존 필수품이다.

남성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가방을 스타일 아이템으로 만들었다. 헤지스액세서리 윤미나 디자인실장은 “보수적인 한국 직장문화 속에서 수트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한계를 느낀 젊은 층이 가방을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최적의 아이템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베컴, 브래드 피트 같은 남성미 넘치는 셀러브리티들이 가방을 애용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남자들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국내에서는 2004년 방영된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배우 조인성이 수트 차림에 백팩을 메고 나와 자유분방하면서 멋스러운 이미지를 선보였다.

가방 어떻게 고르고 멜까

잘 차려입은 정장부터 캐주얼까지 모든 스타일을 아우를 수 있는 백팩은 남자 가방의 기본이다. 최근에는 소재와 컬러, 디자인이 더욱 다양해졌다. 직장인들은 감색이나 회색, 검정 같은 무채색 백팩으로 프로페셔널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 빈폴 액세서리, 덱케, 커스텀멜로우, 쿠론이 내놓은 소프트한 사각형 모양에 군더더기 없이 슬림한 디자인은 수트에도, 비즈니스 캐주얼에도 어울린다.

‘백팩인 듯, 백팩 아닌’ 하이브리드 백팩도 인기다. 투미 ‘알파2 브리프 팩’은 브리프케이스와 백팩의 장점을 모았다. 백팩처럼 등에 멜 수 있되 내부 구성은 브리프케이스처럼 서류를 정리하기 쉽게 돼 있다. 투미 ‘뉴 알파 브라보 르준 백팩 토트’는 백팩 윗부분에 손잡이를 달아 토트백처럼 들 수 있다. 닷드랍스 투웨이백은 가방 위와 옆에 손잡이가 있어서 세로로 세우면 백팩, 가로로 눕히면 브리프케이스로 쓸 수 있다. 투미 이현정 차장은 “어깨끈이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고 패드가 두툼해야 깔끔하게 차려입은 수트에 주름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올가을 컬렉션에서 남성용 토트백을 무대에 세웠다. 토트백은 캐주얼하다는 인식이 강했으나 캘빈 클라인, 엠포리오 아르마니 등은 세미 캐주얼이나 비즈니스 정장에 매치해도 손색없을 만큼 모던한 클래식 토트백을 선보였다.

클러치는 포멀하면서 트렌디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쿠론의 클러치 ‘헤리’는 3면이 지퍼로 돼 있어 사용하기 편리하다. 쿠론 석정혜 이사는 “클러치는 물건을 많이 넣지 않아야 멋스럽다”고 조언했다. 손잡이가 없다 보니 클러치를 들면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면서 전화 통화를 하는 것과 같은 간단한 동작도 불편할 수 있다.

메신저백은 힙 아래로 내려오지 않도록 끈 길이를 조정한다. 너무 길면 70~80년대 우편배달부를 연상시킨다. 헤지스 윤미나 실장은 “플랩(덮개)이 있는 메신저백은 진 바지 같이 가장 캐주얼한 차림과 어울리고 덮개가 없는 메신저백은 면바지와 입으면 차분한 비즈니스 캐주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김성훈 인턴기자, 사진=각 브랜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