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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부르고, 시 낭송하고…달라지는 반상회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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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매달 색다른 테마로 참여 유도
여론 수렴 효과 … 민원 처리율 20%P ↑
반상회 앱, 카페 반상회 만든 자치단체도

지난 5월 말 열린 송파구 방이2동의 문화 반상회에서 한 주민이 시를 낭송하고 있다. [사진 송파구청]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지난달 25일 오후 송파구 잠실동의 한 주민회관. 주민 차모씨가 연주하는 기타에 따라 30~50대 주부 20여 명이 노래를 불렀다. 약 1시간의 열창이 끝나자, 한 주민이 내달 예정된 구청 행사 ‘한성백제문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주부들은 일정과 장소에 대한 정보를 수첩에 적었다. 또 다른 주민은 평소 느껴왔던 층간 소음에 대한 불편을 이날 드러내기도 했다.

이는 매달 열리는 송파구의 ‘문화 반상회’ 현장이다. 주민 이모(38)씨는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낭송하면서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어 쉽게 친해질 수 있다”며 “평소라면 얼굴을 붉히며 할 이야기도 웃으며 주고받을 만큼 편안한 모임”이라고 말했다.

송파구에는 이런 문화 반상회뿐 아니라 자영업을 하는 주민 등이 동네 상권을 소개하는 ‘경제 반상회’, 주민들이 함께 동네를 둘러보며 치안에 관심을 가져보는 ‘골목 반상회’도 있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매달 색다른 테마로 주민의 관심을 끌며 반상회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종류의 반상회가 송파구 전역에 도입된 건 약 4개월 전이다. 주민들이 한데 모이니 해결해야 할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자리에 동석한 통반장이 이를 구청에 전달했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각 개인이 홈페이지에 올리는 온라인 민원과 달리 체계적으로 주민의 의견과 고민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파구가 잠실2동의 깨진 보도블록, 송파·오금동의 싱크홀, 잠실동 야구장의 관중 소음 등 여러 민원에 발 빠르게 대응한 것도 이런 반상회 덕분이다. 분기별 민원 처리율도 1~4월 40%에서 5~8월 60%로 크게 증가했다. 반상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구내 주민도 약 150명에서 250명으로 늘어났다.

1977년 대구 산격동에 문을 연 최초의 반상회 전용 공간 ‘반상회의 집’.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반상회는 ‘풀뿌리 주민행정’의 중심이었다.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안부를 물었고, 민원이 생기면 구청에 소속된 통반장에게 전달하는 ‘교류의 장’이었다. 반상회 입지가 흔들린 건 90년대 중반부터다. 95년 자치단체가 출범하면서 ‘의무’였던 반상회가 자율로 운영됐고, 2000년대 들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성화돼 온라인 민원 처리가 늘었다.

중구청이 지난 해 9월 개설한 앱 ‘밴드 반상회’. [사진 중구청]

반포동 한 주민자치센터장은 “지난 20~30년간 급속한 도시화로 주민들의 사생활이 중시되면서 한 호수에 모이는 반상회를 꺼린 것도 한 가지 이유”라고 덧붙였다. 현재 정기적으로 반상회를 여는 동네는 10%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반상회가 예전 같지 않아지면서 통반장의 기능도 상당히 축소됐다”고 말했다.

반상회를 부활시키려 자치구가 발 벗고 나선 건 지난해부터다. 중구청은 지난해 9월 스마트폰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한 ‘밴드 반상회’를 만들었다. 각 동 통반장에게 스마트폰 활용법을 가르쳤고, 이들은 댓글을 달거나 채팅할 수 있는 밴드 앱에서 주민의 민원을 직접 접수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청구동을 시작으로 15개 동이 이 커뮤니티 앱을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도 성남시는 반상회를 ‘주민 제안의 날’로 바꿨다. 각 가구에 건의·불편사항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용지를 나눠주고, 반상회 장소도 카페·식당 등으로 바꿔 주민 참여를 확대했다. 민원이 효과적으로 해결되면서 2년 전 3859건이던 건의 건수는 올해 1043건(8월 20일 기준)으로 줄어들었다. 김찬동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반상회는 여전히 주민의 여론을 모으는데 효과적”이라 “각 자치구의 참신한 정책은 도시의 공동체 정신이 회복되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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