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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행정에 의한 지배는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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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문제를 두고는 정부가 전교조와 교총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새만금과 관련해서는 지방공무원들이 집단 사표를 내겠다고 중앙정부를 압박하고, 국세청의 대대적인 조사에 반발해 부동산중개업협회가 고위 공직자의 투기 실상을 공개하겠다고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이를 두고 노무현 정부의 미숙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와 사회 간의 균형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음에 반해 그에 걸맞은 이익대표와 조정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데 있다.

*** 책상머리서 만든 사무관 입법

식민지배가 남긴 과잉 팽창된 행정기제, 그리고 대외지향적.종속적 자본축적 과정에 수반된 국가의 경제적 기능 강화와 분단구조에 수반된 안보위기 때문에 국가는 시민사회보다 과대 성장돼 있었다.

따라서 국가는 자본축적과 체제유지의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요구를 집성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행정권에 기반해 거의 자의적으로 추출과 배분의 정책, 억압적 배제와 선택적 융합의 전략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척됨에 따라 사회부문이 팽창되고, 교육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시민사회가 성숙해지자 상황은 달라졌다. 국가의 자의적인 지배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결국에는 1987년의 민주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3金 정치의 특성과 과거의 관성으로 인해 사회의 요구가 국가에 투입되는 정치의 과정보다 행정부에서 정책을 만들고 그것을 일방적으로 시행하는 행정에 의한 지배는 계속됐다.

민주화 이후에도 행정사무관이 책상머리에서 기안한 법안이 별다른 수정없이 국회를 그대로 통과하는 사무관 입법 현상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영문도 모르던 이해당사자가 법이 시행되고 나서야 집단 반발함에 따라 각종 '대란'이 끊이지 않았다.

또 참여정부를 표방한 노무현 정부조차 노란 완장을 찬 국세청 직원들이 힘을 과시하는 것으로 부동산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는 것에서 보듯 법에 의한 지배보다 행정권력의 과시에 의한 지배는 관성적으로 계속돼 왔다. 그러나 각종 집단의 반발로 행정에 의한 지배는 이제 한계에 달했다.

각종 대란으로 국가경제가 타격을 입고, 국가권위의 급속한 약화로 무정부상태로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각종 이익단체가 거리로 나서지 않더라도 정책수립 과정에 그들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익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은 국회의 입법청문회다. 다른 나라의 의회들이 하나의 법안을 만들기 위해 몇달씩 계속되는 청문회에서 수백명의 이해당사자 대표들의 진술을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은 노무현 정부의 무능만 탓할 것이 아니라 각종 대란이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반성하고 정치의 과정을 바로세우는 데 앞장서야 한다.

행정부의 각 부처 역시 국민생활에 때로는 법보다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각종 시행세칙을 만듦에 있어 행정편의주의에 입각할 것이 아니라 이해당사자, 그리고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열린 장을 만들어야 한다.

*** 청와대만 국민참여 목청 높여

또 청와대에만 국민참여의 장치를 해서는 오히려 청와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각종 집단의 청와대로의 러시를 촉진시킬 뿐이라는 점을 감안해 청와대는 의회를 통한 국민참여, 행정 부처를 통한 국민참여가 일어나도록 제도를 확충해 나가는 데 조력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익단체들이다. 거리로 쏟아져나가 힘을 과시하기 이전에 자신들의 어려움과 그것을 풀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만들어져야 하는지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해 국가에 제공하고 또 국민을 설득하는 논리를 개발하는 데 힘써야 한다.

정보가 부재한 가운데 정책과 법이 만들어지고 또 외국과의 협상에서 정보부족으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은 국가의 잘못도 크지만 이익단체들이 좋은 정보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에도 그 원인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