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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융프라우 철도와 명품시계 위블로의 만남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올해 첫 열대야 현상이 발생한 지난 7월 10일. 서울의 밤이 푹푹 찌는 찜통더위로 땀을 흘렸다면, 그 시각 스위스 알프스의 새하얀 눈밭에서 펼쳐진 이색적인 스포츠 축제는 관람객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해발 3454m 높이의 드넓은 설원에서 육상경기를 위한 타탄 트랙을 깔고 100m 단거리 세계신기록 보유자 포웰(오른쪽)과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콜로냐가 서로 스피드를 겨루는 이색 이벤트가 열렸다.

시원한 반팔에 캐주얼한 회색 운동바지를 입고 헬리콥터에서 내린 아사파 포웰(Asafa Powell, 33)의 등장은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배경은 스위스 인터라켄(Interlaken) 지역의 알프스에서 가장 크고 길다는 알레치 빙하(Aletsch Glacier). 해발 3454m 높이의 드넓은 설원에는 100m 육상경기를 위한 타탄 트랙(아스팔트 위에 합성수지를 깐 전천후 경주로)이 깔렸다. 이 특별한 트랙의 주인공이 바로 100m 단거리 세계신기록을 두 차례나 갱신한 자메이카 육상선수 포웰이었다.

그는 지난해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스위스 크로스컨트리 스키선수 다리오 콜로냐(Dario Cologna, 29)와 눈밭에서 스피드를 겨루게 됐다. 이색 스포츠 축제의 메인이벤트는 두 사람의 시합이었지만, 메인시합 전후로 꾸며진 다채로운 이색 스포츠 역시 흥미진진했다. 본 게임에 앞서 스위스를 대표하는 여성 육상선수 무징가 캄분지(Mujinga Kambundji)와 그의 릴레이경주 팀원 3명(무징가 선수와 2016 리오 올림픽에서 함께 릴레이팀을 이룬 공식구성원들이다)이 포웰과 남녀 혼성 달리기 시합을 벌였다. 또, 이들은 포웰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건 5개의 팀을 구성해 초등 학생 육상선수들을 코치하며 달리는 단체 이어달리기 경주도 펼쳤다. 결과는 포웰 팀의 승리였지만, 경주에 참가한 초등학생과 스포츠 선수, 관람객 모두 “즐긴다”는 분위기였는지 시종일관 흥겨웠다.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초등학생 선수들이 왁자지껄하게 관람석으로 돌아가자 본 게임이 시작됐다. 스키선수 콜로냐는 자신이 달릴 눈길을 점검하며 추진력을 얻기 위해 몇 걸음 뒤에서 출발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시합임은 누구나 인정했다.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단거리 경기(남자)의 기본 거리가 1~1.8km 는 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두 스포츠 선수가 레이스에 서자 관람석도 순간 조용해졌고, 둘 사이에서도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뿌우~”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의 스위스 전통악기 알프호른(Alphorn, 나무나 나무 껍데기를 감은 긴 나팔 모양의 악기)이 울려 퍼졌다. 슈빙겐(Schwingen, 스위스 민속 씨름) 선수 킬리안 웽거(Kilian Wenger)가 신호총을 쏘자 관객은 제각기 환호성을 지르며 그들을 응원했다. 임시로 깔았던 타탄트랙의 옆면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기자들은 포웰이 달리는 걸음마다 뿜어내는 진동까지 함께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예상대로 포웰은 결승선에 먼저 안착했다. 그렇지만 승리의 트로피(사람 머리보다 큰 워낭으로 명품 시계 브랜드 위블로가 특별 제작한 이 거대한 종은 소를 형상화한 하얀 조형물에 달려있었다)는 포웰과 콜로냐 모두에게 수여됐다.

천혜의 관광자원 활용한 글로벌 마케팅

1. 선수들이 직접 초등학생들의 자세를 코치하며 릴레이 경주를 준비했다. / 2. 육상선수 포웰과 크로스컨트리 스키선수 콜로냐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경기장 주변에 HUBLOT 라는 위블로 홍보물이 보인다.

이색적인 스포츠 축제의 장이 해발고도 3454m에서 마련된 이유는 주최사인 융프라우 철도가 “철도를 다양한 방식으로 알리기 위해” 고안했기 때문이다. 융프라우 철도회사는 알프스 7개 노선을 운영하는 회사의 연합체다. 철도뿐만 아니라 융프라우 지역 관광상품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가지고 있는 자원에 그치지 않고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융프라우 철도 우어스 케슬러(Urs Kessler) 사장은 아시아 지역 마케팅을 위해 1년에 1~2번은 아시아의 지역을 꾸준히 돌며 고객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직접 듣는 소통의 귀재다. 융프라우요흐역에 다양한 볼거리를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시설(얼음궁전, 린트 초콜릿 천국 등)이 바로 이런 소통의 산물이다. 얼음궁전은 거대한 얼음 강에 동굴을 뚫어 만든 곳으로 다양한 얼음 조각을 전시하고 있다. 린트 초콜릿 천국에서는 스위스의 명물인 초콜릿 쇼를 보고, 직접 만드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융프라우 기차를 타면 ‘Top of Europe’이라는 유럽의 정상에 오르기까지 불과 2시간 남짓 걸린다. 기차를 두 번만 갈아타면 된다. 라우터브루넨(Lauterbrnnen, 806m)에서 한 번, 그리고 클라이네샤이덱(Kleine Scheidegg, 2061m)에서 톱니바퀴 열차인 ‘융프라우 산악열차’로 갈아타면 융프라우요흐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열차를 타고 유럽의 정상에 오르는 동안 4계절을 고루 즐기는 호사를 할 수 있다. 초여름 날씨인 인터라켄에서 출발해 산악마을을 지나다 보면 끝없는 야생화 밭이 펼쳐진다. 큰 방울을 메고 목초지에 방목한 소 떼들과 삼각형 지붕을 얹은 알프스 샬레풍의 나무주택이 만들어 내는 풍경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만년설이 덮인 겨울이 눈 앞에 나타난다.

스위스 정상에서 달리기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모인 융프라우요흐 관중들 옷차림도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다 섞여 있었다. 알프스 산속에 있는 인터라켄은 스위스 평균 기온(여름 7월 평균 최고 기온 23°C)보다는 조금 낮은 편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점퍼를 입어야 할 정도로 춥다. 산 아래에서 출발할 때는 모두가 가벼운 옷차림이지만 기차를 타고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코끝에 차가운 바람이 서려 하나둘씩 옷을 껴입기 시작했다. 레이스를 관람하는 관중석에 앉아 자리에 가만히만 있으면 춥다가도, 뛰어다니는 선수들을 보기 위해 일어서면 금세 더워졌다.

기업이미지 부각되고 브랜드 가치 ‘쑥쑥’

스위스 전통레슬링 슈빙겐은 한국의 씨름과 유사하다. 팔씨름 대결을 겨루고 있는 씨름선수 웽거(사진 오른쪽)와 육상선수 포웰(왼쪽)의 팔씨름 대결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융프라우요흐 정상(3454m)은 일반인들이 오르면 고산병으로 고생할 수 있는 높이다. 높은 산에 오르면 두통이나 어지러움, 호흡곤란, 구토감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위해 융프라우요흐로 올라가는 역 중간 중간 고도에 적응하기 위해 간이역에 정차한다. 스포츠를 관람하기 위해 융프라우요흐를 찾은 기자들 몇몇에게도 다리가 무거워지고 머리가 아픈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이렇게 물리적인 환경 자체가 “뛰지 말고 천천히 걸으라”는 신호를 보내는 곳에서 스포츠 축제를 벌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첫 번째는 ‘파급력’을 들 수 있다. 기존 광고나 단순한 스폰서십을 통한 마케팅 활동은 지나친 비용을 초래하며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를 드러낸다. 하지만 스포츠 마케팅은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연관된 브랜드 연상을 제공한다. 브랜드 체험을 통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소비자의 감성을 효과적으로 자극하고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일례로 큰 방울을 단 소를 형상화한 조형물에는 위블로의 로고가 군데군데 박혀있다. 굳이 위블로 브랜드를 강조하지 않아도 스위스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큰 방울과 함께 감성을 자극해 사람들의 관심을 자연스레 끌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스포츠의 이미지는 기업이 추구하려는 혁신과 역동성에도 잘 어울린다. ‘EXPERIENCE MOUNTAINS’라는 융프라우 철도의 슬로건은 산에서도 다양한 경험과 즐거운 체험이 가능하다는 기업 이미지와 부합한다. 노출 효과가 높고 이미지도 부합하니 기업들로서는 스포츠가 매력적인 광고의 매체가 된다. 하이라이트로 치면 약 10초에 불과한 포웰과 콜로냐의 시합을 위해 한국, 중국(상하이와 베이징), 일본, 태국, 인도, 브라질, 캐나다 등의 국가에서 60여 명의 미디어와 국가별 관광청 관계자가 이곳을 찾은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

두 번째는 ‘스포츠 관광’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스포츠 관광 마케팅 활성화 연구(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중심으로)’라는 한국관광공사 보고서에 따르면 스포츠 관광은 문화관광 상품 및 문화이벤트를 개발하여 세계에 알리는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실제로 이번 경기를 통해 국제 스포츠에 가려져 왔던 스위스의 스포츠 풍습이 소개됐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종목인 크로스컨트리 스키나 알프스의 목동과 농부들이 축제에서 열리는 레슬링 경기로 자신의 힘을 자랑하던 슈빙겐과 같은 전통적인 스포츠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관광객 늘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관광 수입을 증대시켜 그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장점도 있다. 융프라우 철도는 이미 초기 개발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갔지만, 창의적으로 운영됐기에 그 부가가치는 매우 컸다. 지역의 독특한 문화, 예술, 관습에 기초하고 있어 상품 개발에 많은 투자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번 스위스 방문 때 기자단의 안내를 맡은 절반 이상이 인터라켄 지역주민으로 본업이 따로 있는 파트타이머였다. 피르스트(First, 2168m)에서 빙하가 녹으며 만들어진 아름다운 산중호수 바흐알프(Bachalpsee, 2271m)까지 이어진 하이킹 코스를 즐기는 동안 10년째 가이드 생활을 부업삼아 하고 있다는 톰 예배르트(Tom Ysebaert)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는 퐁듀나 라클렛(Raclette, 스위스 발레지역의 라클렛 치즈를 녹여 감자, 피클과 함께 먹는 스위스 전통요리)을 추천해주며 “엔지니어로 일하고 은퇴한 뒤 인터라켄의 산악 가이드를 취미 삼아 즐기고 있다”고 답했다. 스위스 산골 원주민이라고 자처하는 그는 얼핏 들으면 새 소리 같은 동물의 음성을 듣고는 고산지대에 산다는 설치류 마모트(marmot)의 흔적(굴)을 찾는 방법, 마모트의 습성과 서식지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려줬다.

이처럼 스포츠 관광은 지역의 지명도를 높이고 이미지를 개선한다. 지역의 새로운 매력을 창출하는 기회를 제공해 지역 주민의 연대감과 문화 수준의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인터라켄 그린델발트(Grindelwald)지역에서 50년 넘게 이어온 가족사업으로 아이거셀트네스 호텔(Eiger Selfness Hotel)을 운영한다는 기젤라 헬러(Gisela Heller)도 이번 축제를 즐기러 융프라우 기차에 올랐다고 했다. 그는 “평소 자주 있는 기회도 아니고, 시골 마을에서 유명인사를 볼 수 있는 자리라 참석하게 됐다“고 했다. 이처럼 일부 통제된 구간을 제외하고는 일반 관광객도 주변에서 행사를 관람할 수 있다는 게 이번 행사의 장점이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슈빙겐 선수인 웽거가 포웰의 오른팔을 꺾으며 끝난 팔씨름 대결로 이색 스포츠 경기는 마무리 됐다. 이런 높은 고도에서의 달리기도 처음이려니와 이전까지는 한 번도 만나볼 수 없었던 크로스컨트리 스키선수와 경기를 마친 뒤 포웰은 “이번 하계훈련은 이곳 융프라우요흐에서 할 수 있겠다”고 눈을 찡긋이며 말했다. 스위스 출신의 콜로냐는 “가끔 스위스에 사는 나도 여름의 눈(雪)을 볼 기회를 놓친답니다.(여름 눈을 볼 수 있는)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즐거웠습니다.”라고 웃으며 화답했다.

- 인터라켄(스위스)=임채연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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