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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쩍!” 빙하 녹는 소리 아찔 … 아늑한 호수마을엔 소금광부 피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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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최대 국립공원 호헤 타우에른에서 즐기는 파스테르체. 빙하 트레킹. 전문 산악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오스트리아를 관통하는 도나우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가까운 대서양이나 지중해에 흘러들지 않고 흑해로 빠져나간다. 오스트리아 지형이 서고동저(西高東低)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프스산맥의 장엄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오스트리아 서쪽으로 향해야 한다. 지난달 week&은 1주일 동안 오스트리아의 서부 3개 주, 그러니까 티롤·잘츠부르크·오버외스터라이히에 머물렀다. 빙하와 호수, 여기에 마을이 어우러진 알프스를 만났다.

알프스의 백미 호헤 타우에른 국립공원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한낮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렸다. 잘츠부르크 공항에 내리자마자 겉옷을 벗고 연방 부채질을 했다.

“250년 만에 가장 뜨거운 여름이에요. 오스트리아에서는 흔한 날씨가 아니니 진귀한 체험을 하는 겁니다.”

알프스 고지대에 서식하는 마모트

바르너 슐츠(55) 오스트리아 국립공원 관리인은 곧장 겨울을 만나러 가자고 말했다. 차를 타고 남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공항에서 두 시간을 달렸다. 정수리에 희끗희끗한 만년설을 얹은 봉우리가 차창 밖을 스쳤다. 슐츠는 호헤 타우에른(Hohe tauern) 국립공원에 막 진입했다고 알렸다. 알프스 고지대에 들어선 덕에 바람이 한결 서늘해졌다.

티롤 주도인 인스부르크 마리아테레지아 거리. 3000m가 넘는 고봉이 도시를 두르고 있다.

호헤 타우에른은 면적만 1836㎢에 달하는 오스트리아 최대 국립공원이다. 지리산 국립공원보다 네 배나 넓은 국립공원이 잘츠부르크·티롤·카린시아 등 오스트리아 3개 주에 뻗어 있다. 1800㎞ 길이의 하이킹 코스와 300개의 계곡, 150개의 호수를 품고 있어 짧은 시간에 그 매력을 전부 섭렵하는 건 불가능하다.

구름 걷힌 그로스글로크너 봉우리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들.

대신에 국립공원을 여행하는 축지법이 있다. 그로스글로크너 하이 알파인 로드(Grossglockner high alpine road)를 오르면 된다. 잘츠부르크와 티롤을 연결하는 이 도로를 타면 해발 2571m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다. 5월에서 10월 사이에만 길을 개방하는데 연 100만 명이 찾아와 달린다고 한다.

알파인 로드는 시속 50㎞ 이하로 속도를 제한한다. 통행료는 고속도로만큼 비싸다. 승용차 한 대에 34.5유로(4만5000원)를 지불했다. 길을 오르면서 자동차가 더 천천히 가주길 바랐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알프스가 변신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골짜기에 들어선 교회와 집이 점으로 바뀌더니 이내 빽빽한 침엽수림이 드러났다. 고도 1500m 지점을 통과하자 산허리를 따라 초지와 야생화 군락이 펼쳐졌다. 2400m 지점을 지나면서부터는 초목의 자취가 사라지고 얼음과 눈 세상이 됐다.

20분을 더 달려 알파인 도로 끝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백두산(2750m)보다 높은 땅에 훌쩍 올라선 셈이었다. 전망대에서 오스트리아의 최고봉 그로스글로크너(3798m)를 오롯이 마주했다. 피라미드처럼 뾰족한 봉우리에 생크림이라도 바른 듯이 눈이 덮여 있었다. 그로스글로크너와 어깨를 견주는 다른 고봉들도 마찬가지였다. 만년설이 덮인 산은 이곳에서 여염의 풍경이었다. 정녕 알프스에 온 것을 실감했다.

“쩍! 탕!”

맑은 하늘에 우레와 같은 소리가 울렸다. 그로스글로크너가 품고 있는 파스테르체(Pasterze) 빙하가 갈라지는 소리였다.

“굉장하죠? 옛날 사람은 이 소리를 듣고 용이 운다고 생각했답니다. 용이 살고 있는 알프스를 신성한 장소로 여겼고요.”

잔뜩 겁이 나서 빙하 근처로 가보자는 트레킹 가이드 토니 사우퍼(41)의 말에 머뭇거렸다. 자신의 뒤만 따라오면 안전하다는 사우퍼의 말에 겨우 발을 뗐다.

1960년대에는 알파인 로드 전망대에서 5분만 걸어가면 곧장 파스테르체 빙하로 연결됐지만 지금은 30분 정도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기후 변화로 빙하가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파스테르체는 오스트리아 최대 빙하로 길이만 8.4㎞에 이르는데 1851년보다 크기가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한다.

“빙하 1㎝가 만들어지는 데 20여 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은 1년에 10m씩 빙하가 사라지고 있어요.”

빙하의 굉음은 빙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용의 경고일지도 몰랐다. 군데군데 빙하가 갈라진 크레바스 사이로 쪼르르 물이 흘렀다.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위엄은 여전했다. 풀 한 포기 허락하지 않고 수만 년간 얼음을 층층이 쌓아온 빙하였다. 언제고 이 자리에 섰을 때 차갑게 빛나는 빙하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소금을 품은 호수 마을

지도를 보면 오스트리아 내륙에 수백 개의 바다(see)가 있다. 독일어로 바다든 호수든 ‘제(see)’라고 부르는 데서 오는 혼선이다. 오스트리아는 내륙국이라 바다가 없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의 ‘제’는 전부 호수다. 그 수만 600개가 넘는다. 알프스에서 흘러내린 담수가 산골짜기마다 오목하게 고여 있다.

오스트리아 알프스에서 유명한 여행지 중 하나가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다. 오스트리아 서북부 지역에 위치한 호수 76개와 그 주변 지역을 아우르는 이름이다. 호수 딱 76개만 골라서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가 있다. 이 주변은 14세기부터 소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단일 경제권이었다. 독일어 ‘잘츠(salz)’가 의미하는 바가 소금이다.

알프스 곳곳에 있는 오두막집. 여행자를 위한 숙소다.

바다가 없는 나라 오스트리아가 소금을 얻게 된 경위를 따지려면 신생대 3기, 그러니까 대략 25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프리카 대륙이 유럽 대륙을 밀어 올리는 힘으로 탄생한 것이 지금의 알프스산맥이다. 바다 밑에 있던 땅이 융기하면서 군데군데 바닷물이 갇혔다. 물이 증발하고서 남은 소금결정이 암염(巖鹽)이다. 잘츠카머구트 일대에서는 기원전 2000년부터 소금 돌덩이를 채취했다. 14세기에는 호수에 배를 띄워 소금광산에서 캔 소금을 전 유럽으로 실어 날랐다고 한다.

그 시절 유럽에서 소금은 황금이었다. 소금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알프스 산골짜기 깊숙한 곳에 성을 쌓고 교회를 올렸다. 잘츠카머구트 호수 주변의 그림 같은 마을은 모두 유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수 마을 할슈타트.

week&은 잘츠카머구트에서도 오버외스터라이히주 할슈타트(Hallstatt)를 골라 여행에 나섰다. 할슈타트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호수 마을이다. 그로스글로크너에서 잘츠부르크까지 두 시간, 잘츠부르크에서 할슈타트까지 다시 두 시간을 차로 이동했다.

할슈타트 호수와 어우러진 마을은 여행의 피로감을 누그러뜨릴 만큼 아름다웠다. 알프스 산비탈을 따라 8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알록달록한 집들이 잔잔한 호수 위에 그대로 반영됐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있는 알프스 고봉이 수직의 세계였다면 넓고 잔잔한 호수는 수평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이 천국 같은 마을이 누군가에게는 지옥 같은 현실이었다. 동화에서 튀어나온 마을에도 고된 삶의 흔적이 있었다.

“할슈타트의 남자 대부분은 소금광산의 광부였습니다. 광산에서 호수 선착장까지 소금 돌덩이를 나르는 일은 대대로 여자의 몫이었죠. 할슈타트의 여자는 1000m 높이에 있던 광산에 올라가 소금 포대를 짊어지고 내려왔다고 해요.”

티롤 칼스에서 마주친 오스트리아 전통 악단

잘츠카머구트에 동행했던 해럴드 호이스(57) 오버외스터라이히주관광청장을 따라 500~600년 된 목조 건물이 남아 있는 옛 골목으로 들어섰다. 지게를 진 여자를 형상화한 작은 청동 조각상이 벽에 걸려 있었다. 소금산업이 번창했던 중세시대부터 소금산업이 쇠락한 60년대까지 할슈타트의 여자들은 소금을 등에 지고 수천 번 이 좁은 골목길을 걸었을 게다.

잘츠카머구트의 음식은 싱겁기로 소문났는데, 여기에도 이유가 있었다. 이 지역 주민이 소금을 목숨처럼 귀히 여기다 보니 음식에 넣는 소금조차 아꼈을 거란다. 식당에 들어가 할슈타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주문했다. 오스트리아 전통음식 슈니첼이 나왔다. 고기에 빵가루를 묻혀 튀겨낸 것이 영락없는 돈가스였다. 한 점 썰어서 입에 넣었다.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유독 담백했다. 어느새 호수 저편으로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었다.

여행정보=오스트리아 알프스를 여행하려면 잘츠부르크를 기점으로 이동하는 것이 낫다. 우리나라에서 잘츠부르크까지 직항은 없다. 루프트한자 독일항공(lufthansa.com) 이 인천~뮌헨, 뮌헨~잘츠부르크 노선을 주 6회 운항한다. 호헤 타우에른 국립공원(nationalpark.at)은 여행자를 대상으로 가이드 투어를 제공한다. 산악 전문 가이드를 따라 그로스글로크너, 파스테르체 빙하 등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국립공원 내부의 케이블카와 어트랙션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여행패스 ‘호헤 타우에른 카드’를 소지하면 가이드 투어가 무료다. 카드는 호헤 타우에른 관광안내소나 주변 호텔에서 구입할 수 있다. 6일권 어른 62유로(8만1000원), 어린이 31유로(4만원).

글·사진=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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