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브로커 끼고 ‘개인회생’ 장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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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A변호사는 지난해 10월 16일부터 한 달간 수십 건의 개인회생 신청사건 소송위임장을 회생 신청서와 함께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그런데 서류를 제출할 때마다 A변호사가 근무한다는 법무법인 이름이 달라졌다. 일부 위임장엔 개인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처럼 기재됐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관계자는 “A변호사가 브로커들에게 위임장을 뿌리고 자기 명의로 서류를 제출토록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개인회생을 신청한 회사원 김모씨는 지난 1월 재판 과정에서 “B변호사 사무실에서 소득세원천징수확인서 등 관련 서류를 변조했다”고 실토했다. 법원의 조사 결과 김씨는 7000만원에 이르는 자신의 연봉을 3000여만원까지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모든 가용소득을 채무 갚는 데 써야 한다는 개인회생 관련 규정을 빠져나가기 위해서였다.

 서울중앙지법은 브로커를 끼고 개인회생 제도를 악용해 온 것으로 의심되는 법무법인 9곳과 변호사 12명, 법무사 4명, 브로커 5명 등 30명을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의뢰했다고 17일 밝혔다. 법원은 또 수사의뢰 대상자를 포함한 변호사 58명에 대한 징계를 서울지방변호사회 등에 요청하는 한편 변호사 35명에 대해선 서면경고키로 했다. 지난해 9월부터 ‘개인회생 브로커 체크리스트’ 제도를 시행하면서 추려낸 위법 의심사례 349건을 자체 조사한 결과다.

 파산부는 판사와 회생위원이 사건처리 과정에서 ▶회생 신청서류 허위 작성 ▶소송 위임 관련 법령 위반 ▶서류 보정 고의 지연 등의 의심이 들면 조사를 벌이도록 하고 있다. 서면경고 조치는 지난 1월에도 내려졌지만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인회생 제도는 2004년 9월부터 시행돼 신청건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 2011년 6만여 건이었던 신청건수는 지난해 11만 건을 넘어섰다. 파산부 관계자는 “신청건수 증가는 기본적으로 장기 불황에 따른 것이지만 브로커들을 통해 요건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대거 몰리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개인회생=임금 등 소득은 있지만 채무가 너무 많아 어려움을 겪는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법원이 조정해 채무자가 3~5년간 일정 금액을 갚으면 나머지 채무를 면제해주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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