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 칼럼] 노후 생활 안착을 위한 연금사용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퇴직한 베이비 부머들은 두 번 운다. 먼저 한참 일할 나이에 직장에서 밀려난다는 것이 억울해서 운다. 퇴직하고 난 다음엔 경제적 고통 때문에 또 다시 운다. 나라에서 퇴직자를 지원하는 노후 복지체계가 정비돼 있다면 좀 낫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평생 부어 온 국민연금 시계가 61세 이후로 맞춰져 있다. 결국 퇴직후 재취업 등 생활대책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오랜 세월 소득 절벽과 마주해야 한다. 노후 생활의 안착은 마의 소득 절벽 구간을 뛰어넘어 국민연금을 탈 때까지 여하히 버티느냐에 달려 있다.

내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은 정년이 60세로 늘어남에 따라 54세 이후의 베이비 부머가 일할 수 있는 기간이 5년 더 연장되긴 했다. 하지만 임금피크제가 도입될 예정이서 정년 연장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60세까지 일한다 해도 이번엔 국민연금이란 복지시계가 늑장을 부린다. 현재 61세로 돼 있는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2018년 62세, 2023년 63세로 늦춰지다가 2033년부터는 65세가 된다.

그래도 60세 정년까지 다 찾아먹는 월급쟁이는 아주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 구조조정이니 명예퇴직이니 이런 저런 이유로 회사 문을 일찍 나서는 사람이 여전히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첫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장이 쓴 ‘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근로생애 연구’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 가운데 정년 이전에 조기 퇴직하는 비율은 67.1%에 달한다. 우리나라 평균 퇴직 연령인 53세에 직장을 떠난다고 하면 국민연금을 수령할 때까지 10년가까이 소득 절벽이 이어진다.

퇴직연금, 소득 절벽의 강을 건너는 다리

그럼 어떻게 하면 이 마의 구간을 돌파할 수 있을까. 퇴직후 마주치는 소득절벽이란 강을 건너려면 다리를 놓아야 한다. 다리의 종류는 어떤 강이냐에 달라진다. 강이 얕고 좁다면 외나무 다리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강이 넓고 깊다면 튼튼한 교량을 건설해야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은퇴 생활비는 대개 현역 때의 70% 수준이라고 한다. 어떻든 간에 최저생계비 수준인 월 122만원보다는 많아야 하고 적정 생활비인 월 175만원을 목표로 삼는 게 보통이다. 취미생활이나 여유있는 생활을 원한다면 이보다 높게 책정해야 함은 물론이다.

소득절벽의 강을 건너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다리는 퇴직연금이다. 퇴직연금은 회사가 퇴직금을 적립하거나 직원에게 퇴직금을 운용하게 한 다음 퇴직후 연금으로 쓸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가령 월평균 32만원씩 30세 입사후 55세 퇴직 때까지 25년동안 퇴직연금을 부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투자수익률과 소득상승률 3% 기준 55세부터 10년동안 120만원의 퇴직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퇴직후 국민연금 수령때까지 소득 절벽 구간을 쉽게 방어할 수 있는 셈이다. 비록 연금액이 최저생계비를 약간 웃도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10년 가까운 보릿고개에 이게 어딘가.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아직 퇴직연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지 않는 게 현실이다. 올 1분기를 기준으로 할 때 퇴직연금 일시금 수급자는 전체 퇴직자의 96.8%를 차지한 반면 연금수급자는 3.1%에 불과했다. 이 쯤되면 연금이란 말이 무색해 진다. 일시금으로 수령한 사람들은 대개 창업 자금이나 자녀 결혼자금 같은 목돈 수요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시금과 연금 중 어느 게 유리한지는 연금으로서의 가치를 따져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다달이 100만원을 20년 동안 연금으로 받는다고 할 때 이 만큼의 소득을 창출하기 위해선 시중금리 5%이면 2억4000만원, 2%이면 3억5000만원이 필요하다. 현재 은행예금 금리가 2% 채 안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일시금으로 4억원 가까이 받지 못할 것 같으면 연금수령이 백번 낫다는 결론이 나온다. 퇴직금만큼은 소득 절벽기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목돈 유혹을 떨쳐 버리는 냉정함이 중요하다.

소경 제닭 잡아먹기 식의 조기 연금

일부 퇴직자는 국민연금을 조기 수령해 생활비 충당을 하기도 한다. 노후준비가 그만큼 안됐기 때문인데, 사실 조기연금 수급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 해 연말 기준 44만1219명이 국민연금을 일찍 타갔으나 올해는 50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추산이다. 전체 노령연금 수급자 대비 14~15%에 이른다. 국민연금 가입자 7명에 1명 꼴로 연금 수급 전에 조기 수령한다는 이야기다. 조기연금은 퇴직후 소득이 없거나, 일을 하더라도 소득이 적은 가입자의 노후생활을 보장하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문제는 '손해연금'이라고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듯 조기연금을 받으면 애초 받을 수 있는 연금액보다 상당히 줄어든다는 점이다. 1년 일찍 받으면 1년에 6%씩 연금액이 깎인다. 따라서 5년 일찍 받으면 무려 30%(5×6%) 깎이면서 자신이 애초 받을 수 있는 노령연금의 70%밖에 못 받는다.

따라서 현재의 생활난은 덜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하려면 조기연금을 신청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서명수 객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