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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매거진 위크앤] 나는 주말에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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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주노초파남보.

나에게 무지개가 있다.

활력과 편안, 열정과 휴식, 집중과 일탈의 스펙트럼 -.

일상에 몰두할 때 나는 붉은 색조로 달아오른다. 에너지도, 스트레스도.

주말, 나는 놀랍게 달라진다.

간단한 운동으로, 잠시의 휴식으로, 가족들과의 유쾌한 대화로, 나만의 일상

벗어나기로 나의 색깔은 단박에 시원해진다.

빨주노초파남보.

지금 당신은 무슨 색입니까.

◇ 순네살의 질주-.

3백kg이 넘는 모터사이클에 올라탄 그는 '왕'이다.

검은색 가죽 점퍼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 그리고 짙은 선글라스로 한껏 멋도 냈다. 머플러에서 나오는 둔중한 배기음과 온몸을 출렁이게 하는 묵직한 진동은 언제나 새롭고 짜릿하다.

서울 명동에서 섬유 수출상을 하고 있는 성상익씨는 지난해 9월 초부터 갑자기 라이더(Rider:모터사이클 드라이빙을 즐기는 사람)가 됐다. 그날, 퇴근 길의 차 안에서 길 한편에 세워져 있는 우람한 모터사이클을 우연히 보고 그는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한달음에 모터사이클 매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1천4백50cc 엔진에 몸체 값만 2천6백만원짜리를 덜컥 사버렸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잘 몰라. 그냥 그때 해치우지 않으면 영원히 못할 것 같더라구."

이후 그의 삶은 달라졌다. 주말이면 해질 무렵까지 동호회원들과 서울 근교의 국도.시골길을 누빈다. 모든 일이 밝게 보이고 내일이 기다려진다.

"인생은 지나고 보면 모두가 후회하는 것 아냐? 할 수 있는 건 한번 해보고 후회하는게 좋지 않겠어?"

피커를 둥둥 울리는 거친 록에 가슴이 푸르르 떤다. 음악이 절정을 향해 치닫자 드럼을 두드리는 그의 손도 점점 더 빨라진다.

'두두두두두. 두두둑. 크챙크챙크챙. 두두두두둑. 챙 ….'

굵은 땀줄기가 이마와 목뒤로 흐른다. 단정하게 빗어넘겼던 머리도 이리저리 흐트러지고 헝클어진 지 오래다. 하얀 셔츠는 흠뻑 젖었다.

마침내 끝난 열정의 독주(獨奏).

"내 연주 어땠어요?"

멋적은 웃음을 띤 채 드럼 의자에서 일어나는 사람. 제프리 D 존스 전 주한 미상공회의소 회장이다. 올해로 50세. 한국에서 가장 바쁜 외국인 중 한 사람이다. 이젠 어딜 가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문득 모든 걸 다 팽개치고 망가지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찾은 파격이 드럼이었다. 2년 전 서울 한남동 집 지하실을 연주실로 개조하곤 드럼을 들여놓았다.

"스트레스 푸는 데는 이만한 게 없어요."

그가 수첩을 펼쳐 보인다. 빼곡히 적힌 일정표 속에 빨간 동그라미로 둘러쳐진 '낙원상가'가 눈에 띈다.

유명한 악기 상가에서 새 전자드럼을 사기로 한 주말을 기다리며 제프리는 들떠 있었다.

음 속에 지평선이 떠오른다. 눈을 감았어도 푸른 하늘이 보인다. 코 끝을 감도는 향초의 내음.청량한 명상 음악이 일상의 열기를 가라앉힌다.

살짝 굽은 등을 '고양이 기지개 켜듯' 바닥에 가슴을 붙이며 주욱 편다. 연일 계속된 광고주와의 면담으로 지쳤던 8년차 광고기획자(AE) 이소엽(32)대리의 마음이 활짝 펴진다.

"음~어제는 밤 12시30분에 집에 갔나? 오늘은 아침 9시에 브랜드 전략 설명회를 했고. 그 때문에 지난 주말도 없었고요."

듣기만 해도 피곤한 얘기를 경쾌하게 한다. 웃는 얼굴엔 여유가 배어 있다. 그에겐 지친 몸과 마음을 언제든 누일 수 있는 '요람'이 있어서다. 李대리가 사내 동호회 '요가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든 지도 6개월.

"감정의 기복이 작아지고 자신감과 여유를 갖게 됐어요. 요가는 정말 '마음의 운동'인가 봐요."

몸을 움직여 '꼰 걸 또 꼬는' 동안 마구 꼬여 있던 마음의 매듭들이 스르르 풀린다. 깔개 한장과 운동복 한벌이면 언제 어디서든 李대리는 '주말'이다.

구희령 기자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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