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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열병식이 성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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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유상철 기자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 차이나랩 대표
[일러스트=박용석]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중국에 ‘나라이주이(拿來主義)’라는 말이 있다. 좋다고 생각되는 남의 게 있으면 그것을 가져와 자신의 처지에 맞게 고쳐 쓰는 주의를 가리킨다. 일종의 벤치마킹이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자로 불리는 덩샤오핑(鄧小平)은 이 나라이주이를 아주 적절하게 활용했다. 그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비효율성을 타파하고자 자본주의의 시장경제를 중국에 도입했다. 그런 중국이 무슨 사회주의 국가냐고 비판하면 덩은 “시장은 자본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다”란 말로 응수했다. 중국은 그렇게 시장을 받아들임으로써 오늘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나라이주이 이용에 있어선 덩에게 뒤지지 않는다. 우선 다자주의(多者主義)를 강조하는 시진핑의 외교가 그렇다. 중국은 현재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중국이 국제기구의 틀 안에서 움직이면 다른 나라가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느끼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미국으로부터 배운 방법이다. 미국은 유엔을 만들어 스스로의 행동에 제약을 가했다. 미국이 국제규칙을 준수하는 한 타국은 미국의 힘이 세지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추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는 최근 다음달로 예정된 시진핑의 방미와 유엔 총회 참석이라는 두 활동의 비중이 엇비슷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과거 같으면 미국 방문에 집중하고 유엔 활동은 방미에 따른 부수적 행사로 취급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 국제적인 행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나라이주이를 실행한 대표적 두 행사가 있다. 하나는 지난해 처음으로 12월 13일을 ‘난징(南京) 대학살 사망자 국가 추도일’로 제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그전까지는 난징 시정부 수준에서 기념되던 행사가 이젠 국가적 차원의 추도 대회로 격상됐다. 이는 국제사회가 매년 1월 27일을 ‘국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추모의 날’로 부르며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독일의 만행을 잊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짐하던 데서 착안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역시 지난해 처음으로 9월 3일을 ‘중국인민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로 입법화한 것이다.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인 올해의 경우 세계 각국 정상을 베이징(北京)의 천안문(天安門)광장으로 초청해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 또한 러시아가 5월 9일이면 글로벌 리더를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 펼쳐지는 열병식에 초대해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축하하는 전승절(戰勝節) 행사를 갖곤 하던 걸 벤치마킹한 측면이 강하다.

 중국의 문제는 3주 앞으로 다가온 9월 3일 천안문 열병식이 자칫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데 있다. 초대를 받은 여러 지도자의 참석 여부가 아직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대략 50여 개의 초청장이 발송됐지만 참석이 확정된 건 러시아와 몽골 대통령 두 사람 정도로 알려진다. 이에 따라 중국으로부터 강력한 참석 요청을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고민 또한 깊어진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의 승전=일본의 패전’을 축하하는 자리란 점에서 일본에 대해 느끼게 되는 부담감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의 첨단 무기가 등장하는 군사 퍼레이드에서 그저 들러리 역할을 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다.

 따라서 중국이 올해 가장 공들여 추진하는 9·3 열병식을 성공적으로 치르려면 위의 두 가지 우려를 불식시켜야만 한다. 먼저 이번 행사의 배경에 깔려 있는 역사 인식이 과거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반대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엔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우경화 움직임에 대한 경계의 뜻이 담길 수 있겠지만 그게 지나쳐 현재의 일본 전체를 반대하는 반일(反日)로 행사 분위기가 흘러선 안 될 것이다. 시진핑의 열병식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겠다는 미래 지향적인 것이 돼야 한다.

 다음은 초청한 외국 정상의 의전에 대한 세심한 배려로 이들이 중국의 근력 자랑에 박수나 치러 온 사람이 아니란 걸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아직도 많은 이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이 보여준 이해하기 힘든 대접을 기억한다. 당시 개막식 행사에 초대를 받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등 100여 글로벌 정상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알현(?)하기 위해 30분 이상 줄을 서야 했던 씁쓸한 추억을 갖고 있다. 또 폭염 속에서 개막식을 지켜보다 양복을 흠뻑 적셔야만 했다. 일부 외빈은 아예 에어컨이 나오는 화장실로 피신하기도 했다. 반면 중국 지도자 자리 아래엔 소형 냉방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번 열병식에도 시진핑이 손을 흔드는 것에 맞춰 다른 외국 지도자들이 박수나 치는 꽃병 같은 역할에 그치게 만들면 안 된다. 행사 효과의 반감은커녕 아예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과거 ‘동아시아의 병자’에서 이제 ‘세계의 리더’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중국은 그에 걸맞은 세련된 의전과 세계인의 마음을 끌어안을 수 있는 넉넉함을 보여주겠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이 경우 박근혜 대통령 또한 시진핑의 열병식 초대에 주저할 필요가 없겠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