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우봉 이매방(1927~2015) 선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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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춤의 거목 우봉(宇峰) 이매방(李梅芳·사진) 선생이 7일 오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88세.

 1927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기방(妓房) 예술’로 치부되던 살풀이춤 등 전통춤을 본격적인 무대예술로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예인이었다. 타고난 춤솜씨로 일개 지역 춤사위에 불과하던 목포 등지의 기생춤을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춤으로 끌어올렸다. 70∼80년대 대학 무용과의 교과 과목으로 채택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특히 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90년 제97호 살풀이춤 보유자로 선정됐다. 유일한 두 분야 예능보유자였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 공연에 참가하는 등 한국 춤 해외 소개에도 앞장섰다.

 고인의 할아버지 이대조는 이름난 춤꾼이었다. 그런 피를 받아 걸음마를 배울 무렵 거울 앞에서 혼자 춤을 췄다. 아버지는 몽둥이를 들고 쫓아다니며 반대했지만 일곱 살 때 이웃집 기생의 추천으로 목포 권번(기생 조합)을 찾아가 춤꾼의 길로 들어섰다. 할아버지는 물론 박용구·이창조 등으로부터 승무·검무 등을 익혔다. 10대 초반 중국으로 건너가 유명한 경극 배우 메이란팡(梅蘭芳)에게서 칼춤·등불춤을 배웠다. 메이란팡은 빼어난 여성 역할로 유명했다. 성기숙 한예종 전통예술원 교수는 “선생이 원래 이름인 ‘규태’를 ‘매방’으로 고친 것은 그만큼 메이란팡을 흠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성적인 외모, 춤사위 등 기질적으로 통하는 게 있었다는 얘기다.

 고인은 생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직하고 마음이 고와야 춤을 잘 춘다. 머리 굴리면 춤이 안 된다”고 밝혔었다. 살풀이춤 전수조교인 제자 김정녀씨는 “선생님은 춤에 관한 한 찍소리도 못할 만큼 엄하게 가르치셨다”고 회고했다. 지난해까지 무대에 섰을 정도로 춤 사랑이 지극했다. 자신의 무대의상은 물론 제자들 의상까지 손수 만들어 입힐 만큼 열정이 넘쳤다.

 유족으로 부인 김명자 여사, 딸 이현주씨, 사위 이혁열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 발인은 10일 오전 7시30분, 장지는 경기도 광주시 시안가족추모공원. 02-3410-6914.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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