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릴러 5편 무더위 연쇄 공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귀신이 몰려온다-. 공포영화의 습격이 시작됐다. 기세가 대단하다. 13일 '장화홍련'(감독 김지운)을 필두로 올 여름 찾아올 한국 공포영화는 모두 다섯 편. 외국영화를 보태면 열다섯 편에 이른다.

문제는 양이 아니다. 예컨대 3년 전엔 한국 영화만 열 편 넘게 개봉됐다(성공작은 거의 없었다). 질적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충무로는 귀신을 키워드로 잡았다. 그렇다고 공동묘지에서 머리 풀고, 소복 입고 나오는 건 아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 주변에 배회할 것 같은 원귀(寃鬼)다. 그런데, 그게 바로 우리 자신일 수 있다는 발상이 섬뜩하다. 검붉은 핏덩이나 난무하는 도끼질은 없다. 대신 장롱에서, 식탁에서, 거울에서 끔찍한 혼령이 튀어나온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올 한국 호러물은 가족.친구 관계를 파고든다. 삶의 피로를 달래주고, 상처를 감싸줘야 할 사람이 오히려 공포의 원인이 된다. 사회학적으로 풀면 친밀성의 해체다. 가정 붕괴, 무한 경쟁, 이젠 어디를 둘러 봐도 마음 편히 기댈 데가 없는 걸까.

고전 소설 '장화홍련전'을 현대화한 '장화홍련'은 계모와 자매 간의 숨막히는 적대감에, '4인용 식탁'(감독 이수연.8월 개봉)은 가족 간 불신이 빚어내는 비극에 초점을 맞춘다.

'여우계단'(윤재연.8월)은 여고 무용반 단짝 친구 사이의 끝없는 시기심을, '아카시아'(박기형.9월)는 아이를 입양한 한 부부에게 들이닥치는 괴이한 사건을 그린다.

'거울속으로'(김성호.8월)는 거울 속 이미지가 우리를 죽일 수 있다는 상상력이 오싹하다. 얼추 짐작할 수 있듯 이들 영화는 사이코 드라마를 지향한다. 논리적 타당성을 갖춘 탄탄한 드라마를 기본으로 하고, 그 중간에 객석을 드릴처럼 조여오는 스릴러 코드를 삽입했다.

◇그릇된 욕망의 변주곡=귀신은 이루지 못한 욕망의 표현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를 목조르는 가공할 존재로 변한다. 공포영화는 이런 특성을 잘 드러내는 장르다. 억울하게 죽은 꼬마를 다룬 '식스 센스'나 가장을 잃은 한 부유한 가정을 그린 '디 아더스' 처럼….

한국 공포물의 지향점도 엇비슷하다. 1998년 '여고괴담', 지난해 '폰' 등의 성공에 자극받아 한층 다양해진 소재, 한단계 나아간 형식을 추구한다.

'장화홍련'이 산산이 깨어진 현대 가정을 전통의 재창조란 틀에 담아냈다면, '여우계단'은 교실 내 무한경쟁을 '여고괴담'의 연작 형식으로 그려낸다.

또 소비사회의 상징인 백화점을 무대로 한 '거울속으로'는 자본주의의 비틀린 욕망을 밑바닥에 깔아놓았고, '4인용 식탁'과 '아카시아'도 가족 간 불신 앞에서 점차 미쳐가는 인물을 주목한다.

◇코미디 파워를 이어갈까=올 공포영화는 산업적 의미도 크다. 저예산, B급 무비의 대명사로 불렸던 호러물이 한국에서도 당당한 장르로 뿌리내릴지 주목된다.

지난 2년 간 충무로를 떠받쳐왔던 코미디를 이어갈, 그래서 한국영화의 장르 다양화에 기여할 수 있을지 말이다. 숱한 멜로영화가 맥없이 무너진 가운데 찾아오는 작품들이라 기대도 커진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공포영화는 아직 충무로의 미개척 분야"라며 "지난해 일본에서 히트한 '폰'처럼 외국시장에 진출할 가능성도 큰 장르"라고 말했다.

일단 분위기는 양호한 편이다. '장화홍련'의 경우 지난달 칸영화제에서 프랑스.일본 등에 1백만달러(12억원) 가량 팔렸다. '엽기적인 그녀''조폭 마누라'처럼 한국 호러물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소식도 들려올지…. 그렇다면 충무로의 돌파구가 될 게 분명하다.

박정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