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 상대 도박단 운영 조직폭력배 등 구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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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사는 주부 한모(54)씨는 2년 전 지인의 권유로 처음 도박장에 갔다. 수천만 원의 판돈이 오가는 장면을 목격한 한씨는 “쉽게 돈 벌 수 있는 방법이 있구나”하고 은행에서 돈을 찾아 도박장으로 갔다. 처음엔 몇 십만 원에 그치던 게 돈을 잃을 때마다 단위가 커졌고 일주일에 몇 번씩 도박장에 가는 전문 도박꾼으로 전락했다. 2년간 한씨가 도박장에 바친 돈은 수천만 원에 달했다. 공무원인 남편은 한씨가 도박을 끊기 어렵다고 보고 이혼을 요구했다. 자식들도 그런 엄마를 외면했다. 이혼을 당한 한씨는 식당을 전전하며 원룸에서 살았다. 하지만 돈을 벌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도박장으로 향했다. 한씨는 “도박장이 없어지면 하고 싶어도 못할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주부와 직장인을 대상으로 도박판을 벌여 수십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조직폭력배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충남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5일 주부 등을 끌어 모아 도박판을 벌인 혐의(도박개장 등)로 이모(42)씨 등 6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도박을 한 주부와 도박판을 운영한 조직폭력배 등 60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대전지역 조직폭력배인 이씨 등은 2013년 중순부터 최근까지 2년여간 대전과 충남 금산·계룡, 충북 옥천 등지의 산속 식당과 펜션 등에 도박장을 열고 연락책을 통해 가정주부 등 도박꾼을 모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대포차량을 이용해 약속장소에 모인 도박꾼을 산속까지 실어 나른 것으로 드러났다.

도박장에서는 한 판에 100만~500만원씩 걸고 이른바 ‘아도사키’ 도박을 했으며 판돈이 수억 원에 달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조직폭력배들은 도박운영자와 참여자에게 고금리(20%)로 자금을 빌려주고 판돈마다 10%씩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 등은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15개 장소를 돌아가며 도박판을 벌였고 주요 진입로 등에서 무전기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도주를 준비했다.

충남경찰청 석정복 광역수사대장은 “지난 5월 아내가 도박에 빠져 수천만 원을 잃고 가출했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며 “조직폭력배의 자금출처와 기업형 도박단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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