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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다녀왔느냐” … 차남이 도쿄 머문 사실도 잊은 신격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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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지난달 27일 총괄회장을 만났는데 처음엔 침착하고 아무 문제없었다. 그런데 대화 도중에 ‘어?’라고 생각이 드는 국면이 있었다. 같은 질문을 다시 하거나 내가 말씀드렸는데 다시 말씀하신다든지, 내가 일본 담당인데 한국이랑 헷갈려 하신다든지….”

 4일 일본 도쿄에서 한국특파원들과 만난 롯데홀딩스의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은 신격호(94·사진)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건강에 대해 “(정상과 비정상의) 두 가지 측면이 다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신 총괄회장의 건강상태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에서 있었던 신 총괄회장의 차남 신동빈(60) 회장과의 짧은 회동에서도 그랬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 회장이 보고를 받고 있던 아버지에게 “다녀왔습니다. 죄송합니다”고 하자 아버지는 “어디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2일 동영상을 통해 “(신동빈을) 용서할 수 없다”던 준엄한 태도가 180도 바뀌었을 뿐 아니라 아들이 자신을 해임한 뒤 계속 도쿄에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던 셈이다.

 신동빈 회장도 지난 3일 김포공항 입국장 기자회견에서 신 총괄회장이 정상적인 경영판단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대답하기 힘들다”고 말해 건강이상설에 무게를 뒀다.

 장남 신동주(61) 전 일본롯데 부회장 측이 방송을 통해 공개한 동영상은 신 총괄회장의 건강이상설을 더 부추겼다. 알아듣기 힘든 한국어 발음은 둘째치고, 2011년 자신이 차남을 한국롯데 회장으로 임명한 사실을 까먹은 듯 보였다. 일본 롯데홀딩스를 한국 롯데홀딩스로 헛갈리기도 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총괄회장이 신동주 전 부회장을 알아보지 못하고 “누구냐”고 세 차례나 물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신경정신과 전문의 A씨는 “가족들이 치매는 아니라고 하지만 정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고령으로 뇌혈관이 심하게 수축돼 대부분의 모세혈관이 막혔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경우 옆에 붙어 있는 간병인의 역할이 중요한데 간병인이 어떤 말을 하든지 그 말을 진실이라고 믿는 노인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A씨는 “이런 상황에서 갈등이 가족 간 송사로 번지면 합의로 끝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재계 관계자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에서 묘사된 늙은 왕의 상태와 엇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돈다”고 말했다. 팔순이 넘은 리어왕은 극 중에서 장녀 고너릴과 둘째 딸 리건의 말만 듣고 막내딸 코델리아를 내친다.

 또 다른 전문의 B씨는 “이런 경우의 환자에게 아세틸콜린의 체내 농도를 올려주는 주사제를 처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세틸콜린은 신경전달물질로, 이 농도가 올라가면 기억력이 일시적으로 좋아져 각성제 또는 총명탕의 역할을 한다. 신 총괄회장은 수년 전 서울 롯데호텔을 방문한 가토 고이치 전 관방장관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산삼과 반신욕을 금과옥조로 삼는다고 화답했다.

 실제 산삼배양근이 기억력을 증진시켜 학습효과 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 롯데 임원은 “지난달 총괄회장에게 업무보고를 했는데 예전에 비해 유난히 침을 많이 흘렸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전문의 C씨는 “ 고인 침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에 이상이 생기면서 나오는 현상”이라며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병 증세로 의심된다”고 설명했다.

심재우 기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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