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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정의화 국회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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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파도가 우는 걸 본 일이 있는가

파도가 흐느끼는 걸 본 일이 있는가

바다가 혼자서 혼자서

스스로의 가슴을 깎아내리는

그 흐느끼는 울음 소리를

들은 일이 있는가

- 조병화(1921~2003) ‘파도’ 중에서

사랑을 잃고 달려간 바닷가
청춘을 달래준 파도의 향연

누구나 젊은 시절 실연의 아픔을 겪는다. 나 역시 그랬다. 첫사랑에 실패한 20대 초반, 오륙도가 보이는 부산 바다에 선 내 심정은 시구 그대로였다. “파도가 흐느끼고 혼자서 가슴 깎아내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바위에 부딪친 파도가 포말로 부서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슬픔과 절망을 달랬다. 그리움을 완전히 떨쳐내기까진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사랑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이루어지고 아니고가 아니라 인간을 성숙시키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돌아가신 조병화 선생과는 식사도 같이 하고, 고향인 부산에 초청해 강의도 들으면서 친분을 나눴다. 선생에게서 시집을 선물받기도 하고, 내가 직접 시집을 사기도 했다. 이 시를 읽으면 청춘의 그리움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바위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아무리 파도가 치고 어려운 역경이 있어도 늘 같은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사나이의 호연기지 같은 것이 느껴져 더욱 좋아하는 시다.

정의화 국회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