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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양키스맨도 데려왔다, 한화 가을야구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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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화 이글스는 지난 1일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불펜 투수 에스밀 로저스(30)를 사들였다. 한국 프로야구단이 메이저리그 부자구단 양키스의 현역 선수를 데려온 건 처음이다. 남은 시즌 2개월 반 동안 로저스를 활용하기 위해 한화는 70만 달러(약 8억원)를 투자했다. 투수들이 지쳐 있고, 야수들이 줄부상으로 쓰러진 상황에서 한화는 공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5위(48승47패·8월 3일 현재)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한화는 올시즌 18차례나 홈 경기 만원 관중을 달성하며 프로야구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TV시청률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고, 소셜 미디어를 통한 팬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그룹 홍보에 야구단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중앙포토]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화는 불꽃 같은 시즌을 보내고 있다. 지난 겨울 “김성근 감독을 모셔오자”는 이글스 팬들의 요구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받아들인 게 불꽃의 시작이었다. 지난 6년 동안 5차례나 최하위에 그친 한화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미디어의 관심을 독점했다. 김 감독은 “꼴찌가 놀 시간이 어딨어?” 라는 취임일성으로 팀 재건을 시작했고,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지옥 훈련’을 지휘했다. 패배의식에 빠져 있던 한화 선수들과 팬들은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로저스

 한화의 이슈 독점은 시즌 중에도 이어졌다. 한화는 권혁·박정진·송창식 등 불펜투수들의 과부하 논란 속에도 중위권을 지켰다. 팬들은 온·오프라인에서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 올해 한화의 홈 경기 만원 관중은 18차례로 단연 1위(2위는 롯데 6차례)다. 원정경기에서도 한화 팬들이 부쩍 늘어 프로야구 전체의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TV 시청률 상위권도 한화가 싹쓸이 중이다. 6월 초까지 프로야구 시청률 상위 13개 경기 가운데 11개가 한화 경기였다. 포털사이트를 통해 한화 경기를 보는 접속자수는 평균 10만 명에 이른다. 뉴스 생산량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팬들의 참여도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단연 1위다. 김 감독은 “경기장에 오는 관중뿐 아니라 TV와 인터넷을 통해 한화 경기를 보는 팬들이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 어깨가 무겁다.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한 경기도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전년도 최하위 팀이 이렇게 뜨거운 인기몰이를 한 적이 없었다. 선두 경쟁은 수년째 비슷하게 진행 중인 반면 한화가 최하위에서 탈출하며 전체 판세를 뒤흔들고 있다. 이영훈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포츠의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상품 가치가 올라간다. 순위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전력 평준화가 그래서 중요하다”며 “시즌 초에는 김성근 감독의 인기가 흥행을 주도했지만 지금은 한화의 인기로 확장됐다. 드라마 같은 승부가 이어지면서 한화 야구의 불확실성이 높아졌고, 팬들에게 야구의 재미를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화는 올 시즌 12차례 끝내기 승부(6승6패)를 펼쳤다.

 최근 한화 그룹은 한화 이글스를 모티브로 한 이미지 광고를 하고 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기적이 온다” (김성근 감독 편) “하나 된 팀을 위해 오늘도 내 자신을 불태운다”(주장 김태균 편)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이 있기에 최강이라 외친다”(팬 김건희 편) 등이다. 야구단의 이미지를 그룹 홍보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1990년대까지 프로야구는 모그룹 홍보가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 이들이 글로벌 기업이 된 2000년대에는 홍보에 대한 기대수준이 낮아졌다. 대신 각 구단이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그럼에도 한국 프로야구는 여전히 모기업의 소유구조 아래에 있다. 야구팬뿐 아니라 모그룹의 소비자에게까지 만족감을 주는 게 현실적인 존재 이유다. 지난 2013년 9월 한국체육학회지에 실린 논문 ‘국내 프로야구단의 가치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정영재·김수잔)’에 따르면 한국 프로야구 가치 평가의 첫째 요소가 홍보였다. 야구단을 통한 홍보가 다른 요소(수입·성적·인프라 순)를 앞섰다. 구단이 야구장을 소유할 수 없고, 중계권료가 구단에 배분되지 않는 한국 프로야구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2015년 한화 이글스는 야구단이 그룹 내부의 결속력과 충성도를 높이고, 대외 이미지 강화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단기비용이 들더라도 장기적으로 야구단의 가치는 계속 올라갈 수 있다. 2015년 우승팀은 11월에 결정되겠지만 최고의 성과를 올린 구단은 이미 정해진 것 같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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