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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적 사면은 국민통합 방해 법치주의 불신만 키울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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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호 08면

우리 사회는 형사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만연해 있다. 그 근원에는 수사 단계에서 형사소추권 행사의 부적정성, 재판 단계에서 양형의 불평등, 그리고 집행 단계에서 사면권의 남용이 자리 잡고 있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역사적으로 절대군주인 국왕의 은사권(恩赦權)에서 유래했다. 국왕은 이를 시혜적으로 행사했지만, 현대에서는 예외적인 대통령의 비상적 통치 행위로 파악하고 있다. 사면제도는 대부분의 근대국가에서도 유지됐고,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미국을 효시로 대통령에게 사면권이 부여됐다. 독일의 경우는 사면의 범위를 넓게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나치 독재에 따른 인권 탄압의 희생자가 많았다는 역사적 특수성에 기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사면법 제정 이후 현재까지도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 남용에 관한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사법부의 판단을 변경하는 국가원수의 고유한 권한으로 보고, 권력분립의 원리에 예외가 된다는 입장이다.

 물론 대통령의 사면권은 생계형 민생범죄나 죄질이 경미한 범죄자를 사면함으로써 국민 화합과 통합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형벌의 부당한 집행과 형사 판결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으며 급변하는 법의식과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순기능을 지닌다.

 그러나 사면제도는 사면 대상 및 시기 등 사면 행사 방법에 관한 실체적 규정이 없기 때문에 제한의 필요성이 화두로 제기돼 왔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사면권 남용에 대한 통제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문제점이 산재해 있다. 과거 사면은 경제 활성화라는 명목하에 재벌 회장의 사면과 정권 측근들에 대한 보은 특사가 빈번히 이뤄졌다. 이로 인해 국민은 아직도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을 믿고 있는 현실이다. 생래적으로도 사면제도는 삼권분립하에서 사법권에 대한 중대한 제약이고, 자의적 행사로 오히려 국민을 분열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사면권 행사는 국가형벌권을 행사할 법적 요건이 구비된 사안에 대해 형벌권 행사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벌백계(一罰百戒)를 통한 범죄 예방 효과를 거둘 수도 없다.

 그러므로 사면권은 집권자의 은총이 아니며, 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경우 법에 의한 정의가 개인에게 실현될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 행사돼야 한다. 이탈리아의 헌법학자인 체사레 베카리아도 그의 저서 『범죄와 형벌』에서 “형벌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가혹한 형벌을 과해서는 안 되고 적정하고 균형 있게 형벌을 확실, 신속, 공평하게 집행해야 하고 이러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때 보충적 수단으로 사면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형사제도가 무질서하고 불합리한 법률과 잔인한 형벌로 넘쳐나는 법제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는 그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사면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정당성 없는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사법권을 무력화시킬 뿐만 아니라 법치주의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며 국민 대통합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사면제도는 국민의 법 감정에 합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언제나 남용 위험성이라는 인자를 잠복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제한을 사면법에 구체적으로 입법하는 것이 사면의 필요성과 유용성뿐만 아니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다. 특히 사면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형벌의 목적인 예방 효과를 위해 사면 신청에 대한 의무적 최저형량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형기의 일정 기간이 지난 다음에야 사면 대상자가 된다면 형벌의 목적을 분명하게 하면서 국민의 법 감정 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면의 실효와 취소제도를 법제화한다면 사후적 통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형벌의 목적을 계속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면권의 한계와 제한을 명문화하게 되면 법치국가적 요청과의 양립도 가능해질 수 있다.

  사면(赦免)이라는 한자는 붉을 적(赤)에 칠 복(攵) 그리고 면할 면(免)이 합쳐진 글자다. 상당한 질책 후에 처벌을 면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사면 대상자를 선정할 때에는 범죄 예방의 대상을 범죄인 그 자체에 두고 재범 위험성을 고려해 범인의 연령과 성행, 범행의 동기·수단·결과, 그리고 수형성적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

박광현 광주여대 경찰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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