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기괴 … 매혹 … 판타지 감독의 ‘보물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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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기예르모 델 토로의 창작노트
기예르모 델 토로·
마크 스콧 지크리 지음
이시은 옮김, 중앙북스
264쪽, 3만5000원

설령 기예르모 델 토로가 누군지 몰라도, 페이지를 넘겨보는 재미가 충분한 책이다. 그가 직접 그린 기괴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비롯, 볼거리가 그득하다. 물론 그를 안다면 더욱 좋다. 그는 고국 멕시코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활동해온 영화감독이다. 개성만점의 수퍼히어로가 활약하는 ‘헬보이’(2004), 무섭고도 슬픈 ‘판의 미로’(2006), 거대 로봇과 외계 괴수가 대결하는 ‘퍼시픽 림’(2013) 등을 통해 남다른 상상력을 펼쳐왔다. 이 책은 시각자료와 인터뷰, 감독 자신과 다른 이들의 글을 통해 그 상상력의 면면과 원천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영화 ‘헬보이2’(2008)에 대한 기예르모 델 토로의 메모. [사진 중앙북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곳곳에 삽입된 델 토로의 노트다. 그는 영화계에 입문할 때부터 줄곧 노트를 써왔다. 종이공책에 펜으로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디테일을 그림으로 그렸다. 판타지라면 컴퓨터부터 떠올리는 시대에, 필기 대신 스마트폰 사진을 찍는 게 익숙한 시대에 손글씨·손그림이 어우러진 그의 노트는 그 자체로 작품처럼 보일 정도다. 사진과 글로 ‘블리크 하우스’를 소개한 대목 역시 군침이 돈다. 미국 LA에 있는 저택이자 델 토로의 창작공간 겸 수집공간이다. 책과 미술품, 영화 캐릭터 모형 등 온갖 것이 모여있다. 동시대 대중문화만 아니라 환상문학의 고전에서 상징주의 미술까지, 그에게 영감을 준 방대한 원천이 드러난다. 서문에서 동료 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델 토로의 노트를 다빈치의 노트에 비견한 이유를 알 만하다.

 델 토로가 걸작만 만들어온 건 아니다. 장편 데뷔작 ‘크로노스’(1993)로 큰 찬사를 받았지만, 그의 할리우드 진출작 ‘미믹’(1997)은 실망스런 혹평을 받았다. 이를 포함, 지금까지 만든 영화 8편에 대한 인터뷰에선 이 재기 넘치는 감독의 창작과정이 할리우드 스튜디오라는 거대 괴물과의 분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화되지 않은 미완의 프로젝트 5편에 대한 노트도 실려있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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