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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동성혼인 합법화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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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논쟁의 초점

동성 간에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올린 김조광수·김승환 부부가 서대문구청에서 혼인신고서를 수리해주지 않자 불복소송을 내면서 동성혼인 합법화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리는 등 세계 각국에서 동성혼인에 대해 인정하는 추세가 확산되면서 국내에서도 성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한 반대 논란도 만만치 않다. 양쪽의 의견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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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혼은 원래 합법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법은 동성 간의 혼인을 금지한 적이 없다. 혼인은 두 사람 사이의 합의로써 성립한다. 혼인은 반드시 여자와 남자가 해야 한다는 법규정은 없다. 유일하게 가족법 교과서들만이 혼인을 ‘1남 1녀 사이의 결합’이라 한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실정법적 근거도 학술적인 논증도 없다. 그저 사회적 관행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 동성혼과 관련해 극한 대립의 양상까지 보였던 서구 사회와는 달리 우리 법제는 동성 간의 혼인이라는 결합 방식을 거의 알지 못했다. 그나마 드러난 사례들조차 마치 없는 것처럼 모른 체해 왔다. 동성 간의 혼인은 법률적으로 금지된다는 오해는 여기서 연유한다. 이성 간의 혼인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동성혼에 대한 법의 침묵은 그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오해되기 십상이 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최고법인 헌법에 반한다. 헌법상 기본권은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법률로써 제한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원칙은 ‘혼인할 권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권리는 자기운명결정권과 함께 가장 본질적인 기본권이다. 여기에는 혼인의 상대방을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가 포함된다. 그래서 동성혼인을 금지하려면 국회가 법률부터 먼저 만들어야 한다. 반대로 명시적인 금지법률이 없다면 의당히 기본권의 최대 보장이라는 헌법 원칙에 따라 혼인의 상대방을 선택할 권리는 가장 폭넓게 보장되어야 한다. 요컨대 현행 법제는 법의 침묵을 통해 동성 간의 혼인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라는 헌법규정을 들어 이것이 동성혼을 금지하는 근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규정은 제헌헌법 당시부터 남자와 여자 사이의 차별을 없애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더구나 그조차도 한때 없어졌다가 1979년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의 체결을 계기로 80년 헌법에서 부활한 것이다. 어떻게 보아도 이성끼리만 혼인하라는 의미가 삽입될 여지는 없다.

 이 점은 스페인 헌법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페인 헌법 제32조는 ‘남자와 여자는 혼인할 권리를 가진다’고 하여 마치 이성 간의 혼인만 인정하는 모습을 가진다. 하지만 스페인 헌법재판소는 2012년 이 조항은 남녀 간의 평등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며 이를 근거로 동성혼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동성혼은 자연적 출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족제도의 본질에 반한다는 주장 또한 무의미하다. 우리 헌법은 물론 세계 법제는 혼인과 가족을 구분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미 혼인과 무관한 가족들-비혼가족,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입양가족 등-이 혼인에 의한 가족과 마찬가지로 가치 있고 숭고한 생활단위를 구성하고 있다.

 또 하나의 반론은, 혼인은 과거로부터 국가적인 보호를 받아온 사회적 제도이며 그것의 본질은 이성 간의 결합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역시 법리 오해다. 제도 보장이라고 해서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그것이 인권과 충돌할 때에는 그 자리를 인권에 양보해야 한다. 즉 동성이든 이성이든 혼인할 권리는 제도 보장에 우선한다. 설령 이성혼이 혼인제도의 본질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동성혼에 의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성혼이라는 제도에 동성혼이라는 제도 하나가 부가될 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법리가 스페인 헌법재판소나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혼을 인정한 판결을 내린 핵심 근거였다.

 미국의 판결에서 강조되듯 혼인은 사람과 사람이 이루는 가장 아름다운 결합이다. 그것은 서로에 대해 영원히 무조건적인 헌신을 하겠다는 숭고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혼인의 기초로 개인의 존엄을 제시한다. 두 사람의 영속적인 결합을 통해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최대한으로 누리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여기에 성적 지향이나 성별의 문제가 삽입될 이유는 없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김민중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동성 간의 사랑도 마땅히 인정받아야 할 개인의 권리이며 법 앞에서 보호받아야 할 존엄한 평등의 한 내용이라고 본다. 법의 역할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보호에 있다고 생각하면 성적 소수자가 가지는 성적 지향의 자유와 권리도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어느 한 사람의 성적 지향은 근본적으로 개인적 영역에 속하는 자신의 존재양식 또는 삶의 기본 태도에 관한 결단으로서의 성격을 지니므로 각 개인의 성적 지향은 얼마든지 존중받을 수 있다. 이미 법적으로도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하는 차별행위를 평등권 침해로 규정함으로써 각 개인의 성적 지향을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로서 동성관계가 법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는가와 동성관계를 결혼이나 가족으로서 법제도적으로 인정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로 보아야 한다.

 본래 결혼은 개인 간의 사랑·신의·헌신·희생 등을 기초로 성립하는 동시에 결혼을 통해 가족이라는 사회적 존재를 형성하게 된다. 결혼은 당사자 간의 관계 혹은 권리의무를 생기게 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법적으로 몇 가지만 생각하면 혼인상의 배우자가 됨으로써 서로 동거·부양·협조·정조의 의무를 비롯해 부부재산관계, 상속권이나 이혼에 따른 위자료와 재산 분할, 형법상 배우자라는 이유로 인정되는 형벌의 감경과 가중, 소송법상 증인 증언 거부, 상속세의 감액, 연금이나 보험에서의 유족 또는 가족으로서의 지위, 유족보상금의 수령 등과 같은 효력이 생긴다. 이뿐만 아니라 결혼하면 서로 배우자로서 친족이 되고 상대방의 혈족에 대해 인척관계가 성립하게 된다. 결혼을 법제도적으로 이해할 때에는 당연히 결혼에 대한 개인의 법 앞에서의 평등이나 자유뿐만 아니라 결혼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와 부담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혼과 관련한 두 이해관계의 경중을 저울로 정확히 형량(衡量)하기는 곤란하나 결혼의 사회적 의미를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결혼제도의 의미가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당연히 시대의 윤리나 도덕관념의 변화에 따라 결혼제도의 의미도 변화할 수 있다. 다만 결혼은 개인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높은 가치와 이상으로 인정되는 가족이라는 의미까지를 담고 있으므로, 또한 지금까지 지켜져 온 결혼제도는 문명사회의 가장 오래된 제도 중 하나이므로 더 많은 논의를 거쳐 어느 정도의 사회적 합의를 이룬 후에야 비로소 동성결혼이 새로운 혼인 형태의 하나로 인정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결혼과 관련해서는 동성결혼 이외에도 일부다처나 일처다부의 결혼 혹은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다수가 서로 배우자를 특정하지 아니하고 혼인생활을 하는 이른바 혼합결혼 등도 법 앞의 평등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합법화되어야 하는가 하는 여러 문제가 있다). 결국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기는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지 않더라도 필요에 따라서는 동성결혼으로부터 생기는 문제와 관련해 법적 보호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령 동성결혼이 어떤 사유로 깨지게 된 경우에 법원에 위자료나 재산 분할을 청구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 볼 수 있다(현재 사실혼이 법률혼은 아니나 사실혼이 파탄되면 위자료나 재산 분할이 인정된다). 마찬가지로 임대차관계에서 동성관계를 맺고 있는 임차인이 사망하면 다른 동성 커플이 그 임차인으로서의 지위를 승계하는가, 동성 커플에게도 상속권이 인정되는가, 동성 커플도 인공임신을 통해 자녀를 출산할 수 있는가, 입양이 가능한가, 각종의 연금법이나 보험법에서 배우자나 유족, 가족으로서의 지위를 가지는가 하는 문제 등도 앞으로 지속적인 권리 주장을 통해 현행 법률과 관습법의 틀 속에서 얼마든지 긍정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동성결혼의 합법화가 부인된다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동성결혼이 전혀 법적 보호의 밖에 방치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김민중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