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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유로도입 "올해는 N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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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영국이 유럽경제통화동맹(EMU) 가입을 유보했다. 유럽연합(EU)의 통합 화폐인 유로를 쓰는 게 아직 시기상조라면서 당분간 자국 화폐 파운드를 계속 쓰기로 한 것이다.

영국 정부는 9일(현지시간) 유로화 채택을 위한 5개 항목의 경제 테스트를 한 결과, 아직 시기상조로 나옴에 따라 채택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이날 밤 의회 연설에서 "영국과 유로권 경제의 구조적 차이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브라운 장관은 내년 중에 유로화 채택의 적정성 여부를 다시 심사해 조건이 충족되면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로화 채택에 필요한 다섯가지 경제적 조건들 가운데 금융산업 부문이 긍정적이라는 것 이외에 나머지 네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영국 정부는 ▶영국의 경기순환 국면과 경제구조가 특히 금리 부문에서 유로권 국가들과 잘 어울릴 수 있어야 하고▶EMU 가입에 따른 경제적 충격에 잘 견딜 수 있는 유연성이 확보돼야 하며▶유로 도입이 외국인 직접투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하고▶영국의 금융산업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경제성장과 고용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어야 한다는 다섯가지 조건을 1997년에 제시했다.

그동안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유로화 채택을 집권 노동당의 대표적 실천과제 중 하나로 제시하면서 2006년 총선 이전에 이를 결정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경제정책을 쥐고 있는 브라운 재무장관은 유로화 채택 여부는 전적으로 경제적 평가에 기초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총선 이전 국민투표 실시를 반대해왔다. 브라운 장관은 블레어 총리의 당내 라이벌이다.

영국 국민들은 과반수 이상이 유로화 채택에 반대하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34%만이 유로화 채택에 찬성하고 60% 이상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더 타임스를 제외한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영국의 주요 언론들은 대체로 유로화 채택을 지지하고 있다. FT는 10일 논평에서 "브라운 장관의 결정이 영국을 유럽의 변방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15개 EU 회원국 가운데 독일.프랑스 등 12개국은 지난해 1월을 기점으로 자국 통화를 버리고 유로화를 쓰고 있으나 영국.스웨덴.덴마크 3개국은 자국 통화를 유지하고 있다. 스웨덴은 올해 말 유로 가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할 예정이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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