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호르몬 많아도 여자는 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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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인도의 두티 찬드(19·사진)는 스포츠 불모지인 인도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여자 육상 기대주다. 2012년 인도 청소년 육상대회 100m에서 11.8초의 기록을 세웠다. 이듬해 인도에서 열린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200m에서 23.811초로 동메달을 탔다.

 하지만 영연방대회 직전인 지난해 7월 무기한 출전이 중지됐다. 국제육상연맹(IAAF)이 “찬드의 혈중에 (남성 호르몬의 하나인)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남성 수준이어서 여성으로 볼 수 없다”고 판정했기 때문이다. 찬드는 약물이나 수술을 통해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추란 권고를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올 초 스위스 로잔에 있는 스포츠중재법정(CAS)에 제소했다.

 그로부터 넉 달 여 만인 27일(현지시간) CAS가 찬드의 손을 들어줬다. “테스토스테론이 운동 능력에 큰 이점을 준다는 IAAF의 주장은 신빙성이 적다”며 IAAF의 결정을 2년 간 정지시켰다. 또 IAAF가 2년 내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관련 규정도 폐기토록 했다.

 법정은 “경기대회는 남자 혹은 여자대회로 나뉘어있지만 인간의 성이 둘로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연은 그다지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성을 결정하는 단일하면서도 확정적인 기준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자연적이면서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의 몸 상태로 인해 (남성 또는 여성으로 뛰는 것으로부터) 배제되어선 안 된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에 대해 “성이 (남성성 혹 여성성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강하냐의) 스펙트럼 상의 문제란 최근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며 “스포츠 관료들이 남녀의 경계를 어떻게 규정지을지 고민을 안겼다”고 보도했다.

 찬드 이전에도 테스토스테론이 과다한 여자 선수들에 논란이 있어왔다. 2009년 남아공의 카스터 세메냐가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800m에서 1분55초45의 기록으로 우승한 뒤 경쟁 국가의 요청에 따라 성별 검사를 받은 게 대표적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IAAF는 2011년 여성 선수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남성 보다 적어야 한다는 규정(리터 당 10나노몰)을 신설했다. 그게 이번 정지 판결을 받은 규정이다.

 찬드는 자신의 법률대리인을 통해 “나에게 아무 책임이 없는 문제로 수모를 당했다”며 “판결 덕분이 다른 여성 선수들이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아도 되게 돼서 기쁘다”란 입장을 내놓았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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