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합의안은 거부된 방안 … 일방적 발표 황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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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三菱) 머티리얼이 2차대전 중 강제 징용된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금을 지불키로 합의했다는 보도는 중국 노동자들의 동의를 받지 못해 폐기된 일방적 안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인 노동자들의 소송 대리인단 대표인 캉젠(康健·사진) 변호사가 27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캉 변호사는 “미쓰비시 측과 법적 합의를 위해 협상해 온 건 사실이나 아무런 진척이 없어 결렬된 상태”라며 “일본 언론의 보도는 당시 우리가 거부했던 방안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내용”이라고 말했다.

 - 미쓰비시와의 협상 과정은.

 “1943~45년 미쓰비시에 징용된 노동자와 유족 등 40명이 베이징 제1중급인민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집단소송 제도에 따라 판결 효력은 미쓰비시 징용 노동자 3700여명 전원에게 미친다. 지난해 상반기 미쓰비시 측에서 합의로 해결하자는 연락이 와 몇 차례 협상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합의 방안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턱없이 못 미쳐 지난 2월 협상 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그런데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발표돼 당혹스럽다.”

 - 무엇이 문제인가.

 “ 그들이 제시한 합의문을 보라. 자신을 사용자라 표현하고 있다. 우리에게 제시했던 안에는 고용주라 돼 있던 게 이번에 사용자로 바뀌었지만 어차피 같은 뜻 아닌가. 노예상태나 다름없이 일한 강제징용을 어떻게 노사관계로 표현할 수 있나. 미쓰비시는 일본 정부가 보내준 노동자들을 고용했을 뿐이란 입장이다. 강제징용의 과정에서 주동이 아니라 소극적 역할에 머물렀다는 뜻이다. 이는 일본 정부와 기업의 공동 입안 하에 이뤄졌다는 일본 법원의 기존 판례보다 후퇴한 것이다. 우리는 사실관계 인정과 이를 바탕으로 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 왔다. 미쓰비시는 사실관계의 본질에 대한 입장에서부터 차이를 보이고 있다.”

 - 사죄와 배상에서도 입장 차이가 컸나.

 “미쓰비시는 일본 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7년 강제 징용에 대한 일본 기업의 가해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중·일 공동 성명에 따라 배상 책임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이 낸 소송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미쓰비시가 노동자들에게 지불 의향이 있다는 돈의 성격도 배상금이 아니다. ‘중일 우호에 공헌하기 위해서’란 명목으로 한 사람당 10만 위안(약 1876만원)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미쓰비시가 법적 효력을 갖는 배상이라는 걸 인정하고 국제 판례에 따라 한 사람 당 최소 30만 위안은 줄 것을 요구한다.”

 - 사죄 의사를 표명한 것은 진전된 것 아닌가.

 “일부 중국 언론들도 처음에는 환영한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하지만 이는 저간의 협상 진행 과정을 잘 몰라 비롯된 오해다.”

 - 미쓰비시가 한국 노동자에게는 사과조차 않겠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발언의 진의를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만약 당시 식민 지배하에 있던 조선인은 모두 일본 국적이기 때문에 배상책임이 없다는 뜻이라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침략 행위 자체를 부정하는 얘기나 다름없다. 식민 지배는 침략의 결과 아닌가.”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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